‘애플 애호가’들은 새 아이폰 기종이 나올 때마다 새벽부터 매장 앞에서 출시를 기다리며 ‘오픈런’을 한다. 조금 기다렸다 사도 되는 그저 물건에 불과한 스마트폰을 왜 반드시 첫 날 사려고 하는 것일까. 애플 애호가들은 스마트폰이 못마땅한 기성세대 뿐 아니라 애플 이후 완전히 바뀐 산업 지형도를 분석해야 하는 마케터들에게도 연구 대상이었다. 그들은 왜 아이폰을 사려고 줄을 서는가.
그 이유는 의외로 ‘애플 애호가’라는 그들을 수식하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애플을 사랑한다.
물건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일까. 사랑의 숭고함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행태의 감정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을 경멸할 지 모른다. 그런 표현은 다소 천박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30년간 소비심리학을 연구해 온 애런 아후비아 박사는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과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인 사랑이 공통점을 있다고 믿는다. 소비자가 사물을 사랑하게 되는 애착형성 과정에서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작동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신간 ‘사고 싶어지는 것들의 비밀’에서 소비자가 물건과 사랑에 빠지는 매커니즘, ‘관계난로’ 개념을 통해 잘 팔리는 물건이 갖고 있는 공통의 속성 중에 ‘사랑’이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관계를 더 뜨겁게 만드는 ‘관계난로’는 의인화, 사람 연결기, 자기감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람처럼 만들어져 시장에 나서는 상품은 더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다. 한 연구에서 슬롯머신 이미지를 만들고 이용자들의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이용자들은 사람의 얼굴이 담긴 슬롯머신을 더 선호했다. 이는 슬롯머신 이용자들이 타인을 조종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난로 중 의인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 연결기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물건의 힘이다. 사람연결기는 물건은 아니지만 인기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들 속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보통 전체 드라마를 한 번에 공개하는데 미국 케이블방송 채널인 HBO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공개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런 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는 날마다 그 드라마를 이야기하게 만들고, 소비자가 기업 대신 직접 마케팅에 뛰어들도록 한다. 아동용 애니메이션 ‘마이 리틀 포니’를 사랑하는 성인 남성들, ‘브로니’들도 이 사람연결기의 특성을 보여준다. 사람연결기의 특성을 가진 물건은 소비자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물건을 홍보하고 알리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마지막 자기감은 ‘내가 사랑하는 것이 곧 나’라고 믿는 특성이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는 일기, 우표 등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특성이 나타난다. 특히 유명인이 소유한 물건은 그 유명인과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이를테면 유명 스포츠 선수의 땀이 묻은 유니폼이 경매에서 비싼 값에 낙찰되는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관계난로는 이처럼 사물에 대한 냉랭하고 실용적인 감정을 애착이 넘치는 감정으로 바꾸는 심리적 매커니즘이다. 저자는 관계난로가 현대의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제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물건은 서사를 가져야 한다. 서사, 즉 스토리가 없으면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스토리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 CEO, 마케터, 글을 쓰는 작가와 기자, 모든 생산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마케팅의 기본기가 되었다. 저자는 그 서사의 기초가 ‘사랑’에 있다고 말한다. 단지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놓는 것보다 제품을 사랑할 만한 장치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대의 모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팔고 있다. 물건과 서비스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브랜딩해 세상에 선보여야 하는 시대다. 단지 마케터 뿐 아니라 직업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 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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