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간질환을 앓는 중증 환자가 뇌사자의 간 기증을 기다리는 대신 생체 간을 이식받으면 생존율이 3배 가까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김덕기·이재근·주동근 교수와 임승혁 강사 공동 연구팀은 2005∼2021년 간 이식 대기 환자 중 중증 말기 간질환 환자 649명을 대상으로 1년 생존율과 거부반응 발생률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26일 밝혔다.
연구팀은 간질환의 심각도를 토대로 측정한 위급도에 따라 뇌사자 간이식 순서를 부여하는 기준인 멜드(MELD) 점수가 30점 이상인 환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조사 대상자 중 생체 간이식을 받기 위해 준비한 A군은 205명, 뇌사자 간이식만 대기한 B군은 444명이었다. 조사 결과 실제 간 이식을 받은 환자는 A군이 187명(91.2%), B군은 177명(39.9%)으로 집계됐다. 비율로 따지면 생체 간이식을 받기 위해 준비한 환자의 간이식 시행 기회가 2배 이상 많았다는 의미다.
뇌사자 간 이식만 기다리다가 끝내 수술받지 못한 B군의 1년 생존율은 28.8%에 그쳤다. 10명 중 3명만 1년 뒤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반면 뇌사자 기증을 기다리지 않고 생체 간이식을 받은 A군의 1년 생존율은 77.3%로, 3배 가까이 높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생체 간 이식을 받은 환자는 수술 후 합병증이나 거부반응 발생률 등이 뇌사자 간을 이식했을 때와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간을 이식한 공여자들도 큰 합병증 없이 회복했다. 간이식이 필요한 중증 말기 간질환자가 기약 없이 뇌사자 기증 순서를 기다리는 것보다 생체 간을 이식받을 때 간이식 기회가 커질 수 있으며, 생존율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간이식은 간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한 중증 말기 간질환 환자에게 유일한 치료법이다. 건강한 공여자에서 간을 기증받는 생체 간이식과 뇌사자 간이식으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뇌사 기증자가 부족한 탓에 간 이식의 70% 이상이 생체 간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가족들에게 이식받는 경우가 많은데 중증 말기 간질환 환자는 좋은 이식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통상 생체 간 이식이 적극적으로 권장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간이식 수술 위험도가 높은 중증 말기 간질환 환자에서 생체 간 이식의 안전성을 밝혀냈다”며 “말기 간질환 환자도 생체 간 이식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인한 만큼 간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이식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외과학회지 최신호에 실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