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자’가 연이어 후임 없이 퇴임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휘부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처했다.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앞서 6차례 회의를 열고도 차기 공수처장 후보자 선정에 실패한 탓이다. 그동안 수사력 논란에 있어 지휘부 공백 장기화 관측까지 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폐지설까지 제기되는 등 공수처가 안팎으로 불안한 모습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지난 26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이는 여 차장의 임기가 이날로 완료된 데 따른 것이다. 김진국 처장에 이어 여 차장까지 퇴임하면서 내규에 따라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직무대행을 맡는다.
‘지휘부 공백’이 현실화됐으나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는 내달 6일에야 7번째 회의를 연다. 이는 대통령에게 추천할 공수처장 후보자 2명을 추리기 위한 논의 자리다. 앞서 공수처장후보추천위는 6차례 회의에서 부장판사 출신인 오동운 법무법인 금성 변호사를 최종 후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당 측 위원들의 지지를 받는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7명 위원 가운데 5명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출신 이혁 법률사무소 LEE & LEE 대표 변호사도 위원 4명의 추천을 받는 데 그쳤다고 전해졌다. 앞으로 열릴 회의에서 2명의 후보자를 추리더라도, 대통령 지명,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야 해 공수처의 ‘지휘부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차기 공수처장이 임명되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만 산적해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서울경제신문이 국회를 통해 공수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수처가 출범 이후 3년 동안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173건 가운데 45건(26%)이 기각됐다. 이는 같은 기간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5.86%)보다 5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게다가 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출범 첫해인 2021년의 경우 총 43건의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에서 기각된 건 10건(23.3%)이었다. 2022년에는 25.9%, 2023년에는 27.2%를 기록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압수수색 영장기각률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반면 검찰은 같은 기간 압수수색 영장기각률이 5%를 유지하고 있다. 공수처가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도 5건 모두가 법원에서 기각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 청구되는 압수수색 영장의 경우 일부 부분 기각되는 사례는 있지만, 전체가 이른바 ‘통기각’으로 처리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며 “공수처 수사의 특수성을 따지더라도 기각률이 30% 가까이된다는 것은 혐의 입증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수사력이 부재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소를 제기하거나 요구하는 등 혐의에 따라 재판에 넘긴 사건도 단 8건에 불과하다. 이는 3년 동안 공수처가 접수·처리한 사건 4448건 가운데 0.17%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나마 지금까지 유죄라는 성적표를 받은 사건은 없다.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공수처 폐지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다. 김용남 개혁신당 정책위의장과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 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는 세금 낭비이자 민주당이 개혁적으로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며 공수처 폐지를 공약으로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공수처가 초라한 성적표로 수사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 ‘선택과 집중에 대한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핵심 친문 검사’로 꼽히는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로 데리고 온 ‘황제 소환’ 등 편향성 논란이 계속되자 공수처가 지난 2022년 3월 선별 입건(고소·고발 사건 중 실제 수사할 사건을 선택해 입건하는 것) 제도를 폐지한 게 독이 됐다는 것이다. 선별입건 폐지가 수사력 분산·약화로 이어지면서 실질적 결과물 도출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공수처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수사할 사건을 고른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조치로 선별입건을 폐지했으나, 이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며 “인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검찰에서 즉시 각하할 사건까지 처리하면서 공수처 내부에 과부하가 걸렸고, 이는 향후 2기 체제가 출범하더라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선별 입건 폐지 전인 2021년 1월 21일부터 2022년 3월 13일까지 공수처가 직접 처리한 사건은 405건으로 이 가운데 24건을 입건(불입건 381건)했다. 타 기관 이첩은 검찰(2162건)과 경찰(452건) 등 2620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직접 처리한 사건 수는 3712건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 진정 사건에 대한 공람 종결 등은 2699건으로 전체의 60%가량을 차지했다. 수사 불개시와 불기소 등도 각각 258건, 728건에 달했다.
인력 충원 등 해결을 위한 공수처 개정안이 무더기 계류 중이라는 점도 공수처에는 고민 거리다. 이들 공수처법 개정안이 21대 국회 임기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무더기 폐기될 위기에 놓인 탓이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35건이다. 이 가운데 국회 문턱을 넘은 건 단 1건에 불과하다. 4건은 해당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 개정안에 반영돼 폐기(대안 폐기)됐다. 반면 30건의 공수처법 개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국회가 논의 과정만 거듭하고 있는 이들 공수처법 개정안에는 △예산·회계 업무 독립성 확보 △수사관·행정 직원 수 증원 △검사의 연임 제한 폐지 △검사 증원 △고위공직자 범죄 범위 확대 등이 담겼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출범 이래 단 1건의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된 건 국회의 무관심 때문”이라며 “현 야당은 공수처 설립을 주도했으나, 이후로는 수사력 확보나 인력 확충 등 실질적인 변화에는 무관심했고, 처음부터 출범 자체를 반대했던 여당은 공소처법 개정 자체에 비판적 입장만 고수할 뿐 전혀 협조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2기 체제 시작을 앞두고 있으나 공수처 안팎에서 희망적 메시지를 발견하기 힘든 이유도 이 때문”이라며 “신임 공수처 수장이 누가 되더라도, 다시 국회에 개정안 발의 등을 짐을 떠안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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