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생명보험업계가 단기납 종신보험 문제로 시끄럽다. 그런데 이번 혼란은 생보업계가 자초한 면이 크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5~7년 정도 보험료를 납부하고 가입 후 10년 간 보험을 유지한 뒤 보험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최근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보다 130% 이상을 환급해준다며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7년 동안 총 2억 원의 보험료를 낸 뒤 가입 후 10년이 경과한 시점에 환급했을 때 2억 6000만 원을 돌려주는 식이다. 민간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은행 적금으로 따지면 연간 7% 이상의 금리를 보장하는 ‘최고의 재태크 상품’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10년 후다. 가입자들이 10년 뒤 일시에 환급을 원할 때 ‘과연 보험사들이 이를 지급할 여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들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운용해 다른 가입자들의 보험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보험업계 일각에서도 과연 보험사들이 연 7%의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운용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보험사들이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에 목을 메는 것이 '단기 성과주의'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험 상품은 대부분 가입자가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한 뒤 먼 미래에 보험금을 받는 구조다. 현재의 판매 성과가 보험사에 이익이 되는 지 실제로 알기까지 십 수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보험사 경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보험사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는 평균 5년이 되지 않는다. 독일의 알리안츠가 회사 설립 후 120년이 넘는 기간 9명의 CEO만 선임했고 일본의 도쿄해상이 최소 5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국내 보험사 CEO는 단기간 성과를 내고 이를 인정받아야 임기가 연장될 수 있다.
누군가는 최근의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 과열 양상을 두고 '수렵 마케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곡식을 재배해 추수한 다음 일부는 겨울을 대비해 저장하고 또 일부는 이듬해 봄에 뿌릴 씨앗으로 남겨둬야 하는데 사냥과 채집처럼 한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얻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버리는 방식이라고 했다. 뒤의 일을 생각지 않으면 결국 보험 시장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다. 최근 정부가 종신보험에 적용되는 비과세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단기납 종신보험이 사실상 저축성 보험이라는 이유에서다. 보험사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반발에 앞서 보험사들이 단기 성과에 기댄 탓에 스스로의 목을 죄는 상황까지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부터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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