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의 어음부도율이 2022년도(0.10%)보다 두 배 이상 높은 0.23%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1년(0.38%) 이후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어음부도 금액도 지난해 5조 3484억 원으로 전년(2조 2520억 원)의 2.4배로 급증했다. 은행들의 기업대출 건전성도 심상치 않다. 2022년 12월 0.3%였던 은행권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2023년 11월 말에는 0.6%까지 치솟았다. 가계 자금 사정도 녹록지 않다. 은행권의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이 같은 기간 1.3%에서 1.8%로 상승했다.
기업과 가계의 자금 사정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은 고금리, 고물가, 경기 부진의 삼중고 탓이다. 기업의 이자 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총이자비용)이 2022년 5.1배에서 2023년 상반기 1.2배로 뚝 떨어졌다. 특히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이 같은 기간 2.0배에서 0.2배로 급락했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빚을 제때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은 전년 대비 61% 늘어 10만 5614건에 이르렀다. 집값 추가 급등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영끌족’들이 금리 상승, 집값 하락세 속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금융통화 당국은 기업·가계의 부채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의 불안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칫 기업과 가계의 유동성 경색이 초래돼 실물경제 위기를 촉발하지 않도록 정책을 균형감 있고 정교하게 실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면밀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 기초체력이 양호해 회생 가능성이 있지만 일시적 자금 상환 부담에 몰린 기업과 가계에 대해선 유동성을 적시에 충분히 제공해야 할 것이다. 반면 부채와 정책 자금 등으로 연명하면서 부실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좀비 기업’들에 대해선 구조조정을 통한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선심 정책 경쟁에 휘말려 구조조정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당국이 긴장하면서 기민하게 대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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