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금리 인상 여파로 지난해 미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4년 만에 최저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확실한 유망 사업으로만 자금이 쏠리는 등 투자 양극화도 심화하는 양상이다. 업계는 올해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움츠러든 투자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투자 열풍이 재연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서치 회사 피치북의 데이터를 인용해 2023년 미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2년 연속 감소해 1670억 달러(약 223조 원) 수준으로 내려앉았다고 보도했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최저치이며 2021년 3000억여 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업계 큰손들의 투자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뉴욕의 대형 벤처투자사인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는 2021년 194건의 투자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지난해는 성사 건수가 20건에 불과했다. 미 실리콘밸리의 투자사 안드리슨호로위츠의 계약도 2021년 239건에서 지난해 145건으로 줄었고 소프트뱅크 역시 지난해 단 7건의 계약만을 성사시켰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스타트업이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성장 전망을 축소했다. 일부는 문을 닫기도 했다.
다만 생성형 AI 등 유망 분야 투자는 오히려 덩치를 키웠다. 확실히 유망한 분야로만 자금이 쏠린 것이다. 실제 지난해 AI 분야에 대한 투자는 254억 달러로 1년 전보다 약 5배 급증했다. 또 지난해 투자금의 약 3분의 2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 AI챗봇 클로드의 개발사 앤트로픽으로 갔다.
재작년부터 단행된 급격한 금리 인상이 리스크가 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열기를 꺾었다는 분석이다. 2019년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리 인하는 실리콘밸리 투자 붐을 일으켰고 2021년 미국 스타트업 투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2022년 상반기부터 약 4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의 기준금리 인상이 진행되며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업계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금리가 내려갈 경우 위험자산 투자에 관심이 쏠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금리 인하가 현실화해도 코로나 사태 당시와 같은 제로 금리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투자 업계는 앞으로도 투자 ‘옥석 가리기’에 매진할 것이며 스타트업도 비용 절감과 수익성 압박에 계속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벤처사 벤치마크의 빌 컬리는 “좋은 회사가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 얼마나 수익을 내야 하는지, 현금 흐름이 긍정적인지에 대한 기대는 3~4년 전과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