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한 공영운 전 현대차 사장이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1.4%에 그친 것을 두고 “정부가 비상상황으로 인식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현대차에서 18년간 임원으로 재직한 후 ‘경제 전문가’로 정치에 입문한 공 전 사장은 지금 같은 저성장 국면에서 “혁신성장의 모멘텀을 만드는 일”을 자신의 역할로 제시했다.
공 전 사장은 29일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민주당 총선 ‘9호 인재’ 영입 발표 이후 언론과의 대면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1.4%라는 경제성장률에는 기업의 이익률 하락과 성과급 급감,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청년들의 고통이 모두 들어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성장률이 0%대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이 문제에 국론을 모으고 있지 않다는 점이 더 충격”이라고 일갈했다.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기 위해 공 전 사장은 “정치권 논쟁의 주제를 바꾸는 일부터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청년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하나씩 끄집어내 제일 중요한 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논쟁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경제 분야에서 혁신성장과 관련한 주제를 제기해 집요하게 끌고 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아래는 공 전 사장 일문일답.
-민주당에서 영입 제안은 언제, 누구한테 받았나.
△지난해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당 관계자가 연락을 해왔다. 이후 3개월 정도 고민했는데 최종 결정 직전 이재명 대표가 직접 연락해 결심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제·민생 정책을 끌고 나가기 위해 이 분야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주도적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민주당은 현재 야당인 데다 반기업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성장 모멘텀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민주당은 예전부터 사회적 화두를 잘 끌고 왔고 성과도 많이 냈다. 이러한 당의 에너지를 신성장 모멘텀 구축을 위해 쏟아낸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앞서 민주당에서 ‘3% 경제 성장’을 정책 목표로 공식 선정했는데, 이를 구체화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재영입식 때 당에서 ‘혁신성장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혁신성장을 위해 당에 제안할 정책이 있나.
△자동차·전자·조선·철강·화학 등 우리나라가 원래 강점을 가지고 있던 기존 산업에서 새롭게 추진되는 신사업 부문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자동차 부문에선 전기차 등 미래차, 반도체에선 시스템반도체가 이에 해당된다. 단순히 기존에 짜여진 산업 구도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산업의 개념 설계부터 기술개발까지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혁신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국가적 인센티브를 투입하고 20~30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 추진을 위해 시급한 입법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당장 논란이 컸던 연구개발(R&D) 예산 관련해 긴급 예산이라도 편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R&D를 대폭 삭감하는 건 이공계 청년들의 기를 확 꺾는 일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할 때는 이를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 특히 R&D가 훨씬 미래 기술 개발에 실효성이 있도록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정책들을 5년 임기의 한 정권 안에서 모두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국회 주도하에 장기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야가 합의해 상설위원회를 구축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을 일관되게 끌고 갈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고 기본 룰을 세우는 역할을 국회에서 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자국 투자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만들어 자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데, 제조업 분야에서 수출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우리나라가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특히 미래 먹거리 산업은 더 과감하게 세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 일부 국가에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자국에 생산거점을 둬야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을 강요하는데 우리는 이에 대응할 정책과 시스템을 구축해 국내 생산 기반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국민들은 민주당이 반기업 정당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현대차에서 20여년 근무한 경력에 근거해 이러한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생각인지 궁금하다.
△현대차에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국민들의 가장 열렬한 지지를 받았을 때가 2020년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서로의 연구소를 교차 방문했을 당시였다. 이 자리에서 현대차는 자신들이 구상하는 미래차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삼성에선 시스템반도체 등 기술 개발 현황을 공유했다. 국내 1·2위 기업이 서로의 강점을 합쳐 혁신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만들려고 하니 온 국민이 지지해준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혁신 노력에 민주당이 적극적인 지원 정책으로 뒷받침하면 오랫동안 작용한 반기업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국민의힘에선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인재로 영입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향후 협력할 계획이 있는가
△고 전 사장은 삼성전자의 모바일 분야에서 정말 큰 성과를 낸 분이다. 현대차 사장 시절 협력 체제 구축을 위해 삼성과 논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떠나 서로 ‘윈윈’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정당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토론하고 논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로 출마할 계획인가
△비례대표로는 안 나가겠다고 못 박았다. 다만 어느 지역구로 출마할지 결정은 당에 완전히 맡겼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곳은 없지만 수도권으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영운 전 현대차 사장
△1964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 동명고·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문화일보 기자 △현대차 전략개발팀장·해외정책팀장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