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국가 간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재 외교’가 홍해 분쟁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이 다국적 함대를 꾸려 친(親)이란 무장 세력들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에 나선 데 비해 중국의 역할은 갈등 상황을 비판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CNN은 30일(현지 시간) “예멘 후티 반군의 민간 상선 공격으로 고조되는 홍해 위기가 중동의 강력한 중재가가 되겠다는 중국의 야심을 시험대에 올렸다”고 전했다. 4개월째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은 주변 지역과 세력으로 확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공개적인 역할은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모르데차이 차지자 이스라엘 아슈켈론학술대학 부교수는 “중국의 조심스럽고 주저하는 대응은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야망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홍해 분쟁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데는 여러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있다. 가자지구 전쟁 초기 중국은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지지하고 역내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서방과 차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홍해 사태가 고조되자 미국이 외교·군사적 행위를 주도하면서 중국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후티 반군이 홍해 도발의 이유로 팔레스타인의 대한 지지와 가자 전쟁 중단 등을 내세우는 점과 이란이 중국과 반미 노선을 함께 걷는 동맹인 점 등도 중국의 개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가자 사태 발생 후 몇 주간 후티 반군에 대한 비판을 내놓지 않았으며 공격을 받은 민간 선박들의 구조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않았다.
중국은 중동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꿰차기 위해 그간 아랍권 국가들의 외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등 입지를 넓혀왔다. 특히 지난해 3월 오랜 앙숙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재개를 이끌며 중재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자 전쟁 발생 초기에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를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등 주변 국가들의 고위 관리를 초청해 평화 방안을 논의하는 등 갈등 해소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조나단 풀턴 미 싱크탱크 애틀란틱카운슬 연구원은 이같은 상황이 “중국의 중동에 대한 접근이 여전히 경제적 이해 관계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중국이) 아직 다른 지역에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할 의지가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해 사태가 불거질수록 중국의 받는 압박 역시 커지고 있다. 우선 세계 주요 교역로인 홍해가 마비되면서 중국의 직접적인 타격도 크다. 중국의 대(對)유럽 수출품은 대부분 홍해를 통하며, 유럽 지역으로부터 수천만 톤의 석유와 광물 역시 해당 항로를 통해 중국 항구로 들어온다. 스위스 물류업체인 퀘네앤드나겔에 따르면 중국 국영 해운기업인 중국원양해운(COSCO) 등이 선적 대부분을 홍해에서 아프리카 남단으로 우회하면서 물류비가 급등하고 있다. 중국이 그간 외교 관계 개선에 공을 들여온 국가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수에즈 운하를 운영하는 이집트는 선박 통행량이 줄어든 데 따른 외화 수입 감소를 겪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