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후 더불어민주당이 새로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1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향후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절차가 남아있는데 정부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막대한 재정 소요와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양곡법 개정안은 미곡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폭락하거나 폭등하는 경우 정부가 초과생산량을 매입하거나 정부관리양곡을 판매하는 등의 대책을 수립·시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격 폭락 또는 폭등에 대한 기준은 양곡수급관리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수급계획 대상은 현행 정부관리 양곡에서 ‘전체 양곡’으로 확대됐다.
민주당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이전 양곡법 개정안보다 정부 의무 매입 부분을 완화했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민의힘은 시장 작동을 위축시키는 법안이며, 거부권이 행사됐던 법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사실상 국회 일사부재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해왔다. 이날 여당 의원들은 안건조정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윤준병 의원의 조정 내용 설명 도중 퇴장했다.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과잉 생산과 가격 하락 등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쌀 소비량이 줄고 있지만 공급 감소폭이 그에 못 미쳐 구조적 공급 과잉이 계속되고 있는데 양곡법 개정안이 도입되면 쌀 생산 유인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위원회를 통해 가격 폭락의 기준을 설정하도록 한 데에서도 추가적인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처럼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할 경우 2030년까지 연 평균 43만 톤의 쌀이 초과생산될 수 있다. 공급과잉 구조가 심화돼 2030년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재정이 소요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개정안 의결 후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과잉생산, 가격 하락 등 시장 개입에 부작용을 우려해 정부가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농어업회의소법안도 농업인단체 등 현장의 반대가 지속하고 있다”며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농산물에 가격 안정제를 도입하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개정안(농안법)’도 이날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농안법은 양곡·채소·과일 등 주요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생산자에게 차액을 지급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이 또한 대상품목과 기준가격, 차액 지급 비율 등을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 의결한다. 정부는 양곡법과 마찬가지로 위원회에서 기준 가격 등을 심의할 경우 사회적 갈등이 초래될 수 있고 영농편의성이 높은 품목으로 생산이 편중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런 부작용을 완화하고 농산품의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채소가격안정제’를 제시하고 있다. 채소가격안정제는 농업인과 농협 간에 계약을 체결해 농업인이 수급조절 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가격 하락 시 손실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다. 농안법과 목적은 같지만 농업인에게 수급 조절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생산 과정에서 수급상황에 따라 계약물량의 50%까지 출하 전 면적을 조절해 수급량이 사전에 조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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