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고금리·고물가 와중에도 미국이 견조한 성장을 이어간 반면 유럽은 경기가 급격히 위축돼 경제 규모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유로존 경제는 1995년만 해도 비슷한 규모였지만 그 뒤로 미국 경제가 두 배나 불어난 반면 유로 지역 경제는 1.5배가량 커지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성장률 격차가 더 확대됐다. 지난해 미국 경제성장률이 2.5%를 기록한 반면 유로존은 예상치보다도 낮은 0.5%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도 미국과 유로존의 성장률이 각각 2.1%, 0.9%로 두 배 넘게 차이가 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된 데는 팬데믹 이후 미국이 펼친 공격적 재정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럽의 에너지 위기 등 단기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두 지역 경제의 성장 궤도를 가른 근본적 요인은 혁신적 기술 개발과 인재 유치 등에서 보인 미국과 유럽의 상반된 행보다. 첨단 기업들의 혁신을 뒷받침하는 자본시장 환경을 갖추고 과감한 해외 인력 유치로 고급 인재 풀을 키워온 미국 경제는 높은 생산성과 역동성을 잃지 않았다. 반면 유럽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데다 급격한 고령화 속에서 저숙련 위주의 이민자 유입으로 혁신 역량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부강해지는 미국과 활력을 잃어가는 유럽의 대비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소극적인 이민정책, 높은 중국 경제 의존도 등 유럽과 유사한 구조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우수 인재 및 숙련 노동력 부족과 생산성 부진으로 경제가 활기를 잃으면서 수출을 이끌어온 첨단산업의 경쟁력마저 약화하는 실정이다. 인구절벽 문제와 격화하는 글로벌 경쟁, 공급망 재편 등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쪼그라드는 유럽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로 성장 동력을 재점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의 혁신과 초격차 기술 개발 등을 뒷받침하고 규제·노동 개혁으로 기업 활력과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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