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또는 변호인의 길을 고민해본 법조인에게는 신분의 갈림길에 대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길을 선택하게 되느냐에 따라 형사 법정에 재판장을 중심으로 우측에 착석할 것인지, 또는 좌측에 착석할 것인지가 정해진다. 형사소송에서 ‘무기대등의 원칙’에 입각한다는 말은 검사에게 진실의무를 부여하고, 피고인에게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범인 공동피고인이 문제 된 사건에서는 ‘무기대등의 원칙’이 종종 무색해지는 다소 낯선 순간이 찾아온다.
현재 대법원의 확립된 판결에 의하면, 공범인 공동 피고인은 증인 적격이 인정된다.
피고인은 공판에 출석하여 피고인석(席)에 앉아 있다가 공범인 공동 피고인의 증인으로 채택되면 증인석(席)으로 이동하여 증인 신문을 받는다. 형사 법정의 실제 크기를 고려하면 증인으로 채택된 피고인은 2~3m 남짓 거리를 이동해 증인 좌석에서 증인으로서 진술(증언)하고, 증언을 마친 뒤에는 다시 피고인의 신분으로 피고인석에 돌아와 앉는다. 이처럼 공범인 공동 피고인의 증인 신문에서는 피고인의 일시적 신분 변화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신분 변화’ 과정은 재판장이 형식적으로 변론을 분리하고, 공판 검사의 질의는 증인으로 둔갑한 피고인에게 공범인 공동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질문으로 한정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피고인은 공범인 공동 피고인과의 공동 범행과 관련돼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 신문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는 증인의 지위와 피고인의 지위가 혼재되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피고인은 진술거부권이 보장돼 진술하지 않거나, 거짓 진술해도 형사 처벌받지 않겠지만, 증인은 전혀 다르다. 증인은 선서를 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으면 혹여 재판부가 불리한 심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에 직면하고, 거짓으로 증언하게 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 변호인으로서는 검찰에게 마치 피고인을 사후적으로 위증죄로 기소할 수 있는 무기(武器)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2항에서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 기본권인 진술거부권,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피고인의 진술 및 증언거부권(형사소송법 제148조, 제149조, 제160조, 제283조의2)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서, 공범인 공동 피고인에 대한 실질적인 증인 적격 또는 증인 신문이 보장되는 제도·절차적 보완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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