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2020년 9월 이 회장을 기소한 지 1252일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과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등 13명의 1심 선고에서 “공소 사실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와 기소가 문재인 정부 당시의 ‘적폐 몰이’와 반(反)기업 정서 부추기기에 휩쓸려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를 위해 부정 거래와 시세조종 등에 관여했다는 ‘억지’ 혐의를 제기하며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구형한 바 있다.
정략적인 ‘대기업 때리기’로 국내 최대 기업의 손발이 묶인 사이 산업계와 국가 경제가 입은 손실은 막대하다. 이 회장이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돼 구속된 2017년 2월부터 삼성은 무려 7년간 반복된 수장 공백과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106차례나 진행된 불법 승계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 회장이 법정에 선 횟수만도 95차례다. 글로벌 기업들이 사활을 건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삼성은 오너가 법정에 불려다니느라 초격차 기술 개발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빅딜’로 부를 만한 대형 인수합병(M&A)은 2016년 전장 업체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었다. 세계 반도체 1위 자리는 지난해 인텔에 넘어갔고 스마트폰 출하량은 13년 만에 애플에 밀렸다. 미래 생존의 열쇠를 쥔 인공지능(AI) 주도권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선점하면서 한국 경제 성장의 불씨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이제 법정의 시간을 끝내야 할 때다. 검찰은 더 이상 정략과 자존심에 얽매여 경제의 발목을 잡지 말고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7년 만에 ‘사법 족쇄’를 벗은 삼성은 본격적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는 사법 리스크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영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대규모 투자와 고용으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반도체의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고 AI·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를 육성해 성장 동력 재점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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