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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고성장인데 인플레 둔화세 어떻게…美물가 안정 ‘미스테리’

美 경제 고성장 속 인플레 둔화 지속

연준, 긴축으로 수요 누르려 했지만

공급 개선에 따른 가격 하락 효과 발생

글로벌 공급망, 팬데믹 이전 수준보다 호조

팬데믹 당시 이탈 인력도 지난해들어 복귀

연준 긴축, 인플레이션 기대 안정 시킨 역할도

지난달 31일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질문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높은 금리와 느린 경제 성장, 취약한 노동시장을 통해 물가를 낮추는 대신 가계와 기업에 어느 정도 고통은 불가피하다” (2022년 8월 잭슨홀 미팅)

“노동시장은 여전히 탄탄하다.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걱정했던 그런 종류의 고통은 실제로 없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2024년 2월 CBS 인터뷰)

약 1년 반 만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생각은 달라졌다. 애초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경제도 식어야 할 것으로 봤지만, 현재 미국 물가는 경제 둔화 없이 안정되고 있다. 파월 의장도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이다. 오히려 미국 경제는 고성장 중이다. 잠재성장률을 뛰어남는 경제 확장 속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이례적인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

고성장 속 인플레 둔화 비결은…‘수요’ 아닌 ‘공급’ 개선


물가가 오를 때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상하는 이유는 자금 조달 비용을 높여 기업이나 소비자들이 돈을 덜 쓰게 하기 위해서다. 가격을 결정하는 두가지 요인, 즉 수요와 공급 중 수요를 줄이는 원리다. 수요를 줄이면 기업 투자가 줄고 물건이 덜 팔리기 때문에 경제가 둔화할 수밖에 없다. 파월 의장이 애초 “고통이 불가피하다”고 봤던 이유다.

정작 미국 경제는 긴축 이후 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은 연간 2.5% 상승했다. 이는 미국의회예산국(CBO)이 추산하는 미국의 잠재성장률 1.9%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나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적정선을 말한다. 미국 경제에서 수요가 줄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은 떨어졌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 개인소비지출(PCE)는 2022년 7월 6.8% 까지 오른 후 지난해 12월 2.6%로 낮아졌다. 특히 근원 PCE 는 현재 6개월 기준 1.9%로 반년 간 연준의 목표(2%)를 밑도는 수준이다.

수요가 줄지 않았는데도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것은 가격의 또 다른 측면, 즉 공급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최근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통화 정책이 큰 힘을 쓰는 대신, 공급 측면의 증가가 생산량을 늘리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급은 크게 두 부분에서 개선했다. 첫 번째는 상품과 관련한 공급망의 개선이다.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집계하는 글로벌 공급망 압력지수(GSCPI)는 2021년 12월 4.33으로 역대 최고치로 상승했다가 지난해 12월 -0.15까지 하락했다. 공급망 압력지수는 주요 대륙 간 운임과 운송기간 등 여러 지표를 합산한 수치로 1997년 이후 평균을 기준선(=제로)으로 이보다 높으면 공급망의 압력이 크다는 의미다. 현재 공급망 압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20년 1월(0.08%)보다 낮다.



두번째는 인력 공급의 개선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현지 경제활동참가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63.0%에서 한달 만에 60.1%까지 급락했다가 현재 62.5%까지 회복했다.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 이상 노동가능인구 중에 실제 일을 하거나 일을 구하고 있는 이들의 비율을 말한다. 팬데믹 당시 고령층 근로자가 조기 은퇴하는 등 직원들이 고용 시장을 떠나면서 급락했다가 지난해부터 회복 중이다. 파월 의장은 최근 CBS와의 인터뷰에서 “일손이 절실히 부족했지만 지난해 고용공급이 늘기 시작했다”며 “주요 연령층 근로자의 노동 참여가 증가했고, 이민도 재개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럼 통화정책은 쓸모없었나…‘인플레이션 기대’ 낮춰


그렇다면 연준의 긴축 정책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과도한 수요 팽창을 억제했다. 이는 곧 금리 인상이 없었다면 인플레이션이 더 크게 상승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리 인상은 분명히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억제하도록 하는 효과를 냈다”며 “2022년 11월 긴축이 계속되자 월마트, 타겟, 아마존은 공급 업체에 더 이상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 주문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수요 둔화와 기업 실적 하락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자 기업들이 판매 가격 관리에 나섰다. 이는 실제 인플레이션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 됐다.

무엇보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뉴욕 연은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1년 후 인플레이션 기대는 2022년 6월 6.8%에서 지난해 12월 3.0%까지 하락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게 고정되는 것이 실제 물가를 통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본다. 만약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인플레이션 기대 상승) 근로자들은 회사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되고, 회사 측은 이를 수용하는 대신 인건비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반영한다.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이 실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에 연준이 2022년 3월 이후 급격히 금리를 올리고 인플레이션 통제 의지를 보인 것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고정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으며 현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 있는 올리비에 블랜차드는 “연준은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2%에 가깝게 유지했다”며 “이런 기대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더 높고 극복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된다”고 연준의 역할을 평가했다.

현재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지속 둔화할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다. 그는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당시 “인플레이션에 대해 우리는 이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의 지연효과가 나타날 경우 수요 둔화에 따른 물가 안정세가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연준 내부에서도 물가 재상승에 대한 우려는 남아있다. 토마스 바킨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는 지난 7일(현지 시간) 한 행사에서 “최근 몇 달간 급격한 상품 물가의 둔화는 가짜일 수 있다”며 “몇 달 내 재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개선이 공급 개선의 영향이라면, 공급이 무한정 확대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경제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인 2%까지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노동력 부족과 인구 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 지속적인 구조적 공급 측면의 제약이 있다”며 “이와 함께 지정학적 긴장과 충격,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 비용을 고려할 때 (연준의 장기 물가 계획이 이뤄지는) 이같은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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