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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케어가 필수의료 공백 이끌어"…통렬한 반성문 쓴 정부[박홍용의 토킹보건]

건보종합계획 "필수의료에 대한 미흡한 투자로 중증·응급의료 공백 초래"

"과다 의료이용·비급여 진료 확대 등 유발해 보험재정에 악영향"

'모든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MRI·CT 폭증 등 '풍선효과' 불러

관련 진료비 3년 만에 10배 늘어

의료수요 폭증을 '의대정원 증원' 이유로 설명한 정부

재정 효율화·필수의료 분야 수가 인상 '두 마리 토끼' 잡을지 주목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8월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을 통해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지난 2일 공개한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에는 지난 정부에서 시행한 '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담겨 있습니다. 무려 66페이지에 달하는 보도자료에는 건보 보장성에 치중한 정책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속속들이 명시하고 있는데요.

먼저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 봅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8월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케어를 발표했습니다. '모든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콘셉트 아래 당시 60% 초반대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70%로 높이겠다는 정책목표였습니다.

문케어의 결과는 문케어의 시행부처인 복지부가 발표한 건보종합계획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건보종합계획 29페이지에는 "그동안의 건보 보장성 정책은 전 국민의 건보 가입 및 비용부담 경감에 중점을 두고 추진됐고 경제적 부담능력이 부족해 치료를 못 받는 문제 개선에 일부 개선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반성은 지금부터 입니다. 그 다음 문장을 살펴보면 "급여의 우선순위에 대한 고려없이 모든 의료영역의 급여화에 치중한 나머지 필수의료에 대한 미흡한 투자로 중증·응급의료 등 공백을 초래했다"며 "과다 의료이용, 비급여 진료 확대 등을 유발해 본인부담 감소에 대한 국민 체감도가 떨어지고 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치는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정부부처 출입을 하면서 보낸 저는 정부가 이 정도로 이전 정책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을 사실 본 적이 없습니다.

한 음압병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엔 14페이지를 살펴볼까요. 정부는 이 페이지에서 "'의료비 부담 완화'의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의료격차 해소 한계에 봉착했을 뿐 아니라 재정 건전성 유지도 곤란하다"며 "언제 어디서나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필수의료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를 슬로건으로 한 '문케어'가 과잉진료 등 의료쇼핑을 부추겼다고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급격한 보장성 강화 및 실손보험 활성화에 따른 본인부담 감소는 불필요한 의료쇼핑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구급차 이미지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그렇다면 모든 비급여의 급여화를 표방한 이른바 문케어는 어떤 부작용을 초래했을까요. 급여화 이전에 67만원에 달했던 뇌·뇌혈관 자기공명영상(MRI) 상급병원 본인부담금은 급여화 이후 18만원으로 낮아졌습니다. MRI를 촬영하는 데 대한 부담이 3분의 1로 줄어든 탓에 초음파·MRI 진료비는 2018년 1891억원에서 2021년 1조8476억원으로 무려 10배나 폭증했죠. 과연 중증 환자가 무려 3년 만에 10배나 늘어난 것일까요.

일단 들여놓으면 본전 이상은 뽑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병원들은 각종 촬영기기들을 사들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MRI 한대의 가격은 20억원, CT는 한대에 10억원에 달합니다. 촬영기기를 들여오며 발생한 대출을 갚으려면 결국 영상을 많이 촬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문케어 이후 고가의 촬영장비가 늘어난 것은 실제 수치로도 확인이 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CT는 2017년 1,964대에서 2020년 2,104대로 늘어났고, MRI는 2016년 1,425대에서 2020년 1,775대로 증가했습니다. 초음파 기기도 2016년 2만7,161대에서 2020년 3만5,660대로 대폭 늘었죠.

마치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이 패배하는 '치킨게임'처럼 일단 대형병원에서 덮어놓고 병상을 늘리고 고가 장비를 들여온 탓에 병상과 영상장비는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1000명당 병상은 12.8개로 OECD 평균의 3배에 육박합니다. 인구 1만명당 CT 장비는 42.2대로 OECD 평균인 35.5대를 훌쩍 넘습니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CT 이용건수는 281.15건으로 OECD(161.0)를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건보계획에서 의료시장이라는 시장(market)을 관리하는 데 실패(failure)한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보도자료의 4페이지를 살펴보면 "행위별 수가에 위험도, 난이도, 시급성, 대기시간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여 진료과목 및 분야별 보상 불균형 심화됐다"고 필수의료 공백의 원인으로 문케어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즉 제대로 보상이 가야 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를 충분히 올려줬어야 하는 시기에 불요불급한 비급여의 급여화에만 치중해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이 발생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실손보험으로 인한 비급여의 팽창을 막지 못한 것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실손보험 기반의 고수익 저위험 비급여 팽창 등의 영향으로 저수익 고위험인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가 고착화 됐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술실 이미지.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했습니다. 핵심 이유로 ‘고령화로 인해 의료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충분한 의사 공급을 하지 못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의사들에 대한 형사책임 면책 등 당근책을 제시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의료수요에 대한 폭증과 필수의료 분야 생태계 공백을 메울만한 충분한 건보 재정을 확보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구조적 요인은 절대 그렇지가 않죠. 우리는 저출생과 총인구 감소, 경제 저성장 기조 등 보험료 수입 증가율 둔화 요인들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07~2020년 2.8% △2020~2030년 1.9% △2030~2060년 0.8%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이번 건보계획에서 "고성장기에 맞춘 재정체계로는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수입정체 및 급격한 지출증가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인구 경제 다운사이징 시대에 맞춰 국민과 국가가 부담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재정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전 정부 정책이 영향을 미친 의료비 상승세는 경로 의존성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의료비 지출 상승을 부추길 것입니다. 아울러 고령화라는 의료비 폭증 요인에다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충분한 보상 등도 모두 우리가 감내해야 합니다. 재정 효율화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이번 정부가 잘 잡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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