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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추상, 그 경계를 파헤치다

■에스더쉬퍼 '에티엔 샴보展'

동굴같은 실내·동물 본뜬 금박

짙은 어둠속 손전등 비춰 관람

기존 예술의 정의에 의문 제기

■에프레미디스 '톰 홈즈展'

바로크 양식 조명·캐릭터 표현

작가의 추상적 회화 작품 통해

인간 존재 취약함·허무함 담아


국내에 자리 잡은 지 2년 차를 맞이한 두 독일 갤러리에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딱 좋을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에스더쉬퍼의 ‘에티엔 샴보’와 에프레미디스의 ‘톰 홈즈’ 전시다. 두 작가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심오한 개념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통찰을 제공하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 새로운 해외 작품을 찾는 MZ 컬렉터들의 관심이 쏠린다.

에티엔 샴보의 ‘무제’. 사진제공=에스더쉬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독일 갤러리 에스더쉬퍼가 준비한 프랑스 작가 에티엔 샴보의 국내 첫 개인전 ‘프리즘 프리즌(Prism Prison)’은 작가가 직접 수집한 이콘화(종교화)에 금박을 씌워 이미지를 변형한 작품을 칠흑같이 어두운 실내 전시 공간에서 소개한다. 관람객은 전시장 밖에 놓인 작은 손전등을 들고 전시장에 들어가야 한다. 손전등을 켜고 금박으로 말, 당나귀, 소 등 동물의 모습을 변형한 이콘화를 비춰보면 마치 동물들은 노란색 허공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관람객은 마치 선사시대의 동굴을 거니는 것처럼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벽화와 같은 동물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넘나 들며 예술의 정의, 창작의 방식, 전시의 형태 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을 하며 2022년 프랑스 릴메트로폴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등 유럽 미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마치 구겨 놓은 양말처럼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조각도 이번 전시의 숨은작품찾기 중 하나다. 청동 조각으로 구현한 이 작품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양말이지만 작품명은 ‘장소’라는 의미의 ‘토포스(Topos)’다.

에티엔 샴보의 ‘토포스’. 사진제공=에스더쉬퍼


아무렇게나 구겨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같은 조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한 수학 공식이 필요하다. 작가는 깔끔해야 할 갤러리에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양말 조각을 아무렇게나 배치해 이질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전시는 3월 9일까지 열린다.

톰 홈즈의 ‘언타이틀드 어레인지먼트’. 사진제공=에프레미디스




에티엔 샴보가 조각과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한 개념미술가라면 톰 홈즈는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좀 더 회화에 가까운 방식으로 탐구하는 현대미술가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독일 갤러리 에프레미디스 서울은 지난해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사진 작품 ‘베티’를 전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번에 개인전을 여는 톰 홈즈는 미국 텍사스 오초나 출신으로 현재 테네시주 캐년 카운티와 잭슨 카운티에서 작업하고 있다. 텍사스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번 전시의 제목 ‘플라제다’는 미국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언급하면서 유행한 신조어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바로크 양식의 실내 공간을 강렬한 조명과 캐릭터 등으로 표현해 현실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모든 회화는 어차피 추상”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펼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사진과 같은 작품이어도 이는 작가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표출된다는 의미다. 어차피 추상일 수밖에 없는 회화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취약함과 허무함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언타이틀드 어레인지먼트(Untitled Arrangement)’ 등 회화 13점과 오브제 1점은 구상과 추상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탐색하며 표면 너머 깊은 의미화 해석을 고려하도록 하는 은유를 던져준다. 전시는 3월 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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