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 신탁사 중 자본력이 가장 우수한 한국토지신탁의 신용도가 부실자산 규모 증가로 한 단계 떨어졌다. 지난해부터 중소 건설사들의 부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리스크가 신탁사로 옮아갈지 주목된다.
한국신용평가는 7일 한국토지신탁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한 단계 강등했다. 수주 실적이 줄어들면서 이익 창출력이 떨어진 가운데 부실자산액이 부동산 신탁사 중 가장 많은 수준으로 불어났다는 판단에서다.
한토신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자기자본이 8630억 원에 달하는 자본력 1위의 부동산 신탁사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토신의 고정이하자산은 4398억 원으로 2022년 말 대비 535억 원 증가했다. 고정이하자산이란 사업장의 분양률·공정률 등을 감안할 때 채무 상환 가능성이 떨어져 채권 회수에 이미 문제가 발생한 자산을 가리킨다. 미분양이 발생했거나 시공사 부도 등으로 공사가 중단돼 분양 대금이 정상적으로 회수되지 않는 사업장이 늘었다는 의미다.
신탁사들은 과거 수수료율이 높은 차입형 토지 신탁을 잇달아 수주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여기에 관리형 토지 신탁 방식 가운데 시행사가 공사를 끝마치지 못할 경우 신탁사가 책임지고 자금을 확보해 준공하는 방식의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 토지 신탁도 크게 늘었다. 분양률이 저조하거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경우 공사 대금 등 필요 자금을 신탁사의 신탁계정대를 통해 충당하는 구조지만 부동산 경기가 우상향하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지방 중소 건설사들이 치솟은 공사비로 잇따라 도산하고 준공 이후에도 분양에 실패한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하자 신탁사들의 자금 유출이 급증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한토신이 참여한 차입형 토지 신탁 사업장은 총 24곳으로 분양률은 80%에 그치고 있다.
이들 사업장에 한토신이 대여한 신탁계정대는 총 6850억 원에 이른다. 미분양이 해소되고 분양 대금이 들어와야 대여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담보 가치가 떨어져 추가 손실만 불어나는 상황이다. 더욱이 전국 미분양 주택도 증가세인 만큼 추가적인 리스크에 노출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 2489가구로 전달 대비 7.9%(4564가구) 늘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자금 조달에 대한 이자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일 기준 ‘A-’ 등급 회사채(3년물 기준) 민평금리는 5.33%로 ‘A’ 등급(4.88%) 대비 45bp(1bp=0.01%포인트) 높다.
부동산 신탁사의 부실자산 규모 증가는 한국토지신탁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14곳 부동산 신탁사의 신탁계정대는 지난해 9월 기준 4조 800억 원으로 증가했다. 2022년 말 2조 5000억 원에서 3분기 만에 2배가량 불어난 셈이다. 신탁계정대 증가분은 대부분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 신탁 계약에 따라 시공사(건설사)가 공사비 부족 등으로 사업을 포기한 경우 신탁사가 대신 투입한 자금이다. 유동성이 고갈된 건설사들이 시공을 포기하면서 신탁사로 위험이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폐업한 건설사는 1948곳으로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올해 만기되는 신탁 사업장이 100여 곳을 훌쩍 넘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1년 부동산 경기 활황에 힘입어 신탁사들의 수주 경쟁이 가장 치열했기 때문이다. 통상 신탁 사업 기간이 2년이고 여기에 신탁사 책임준공 만료일 6개월을 가산하면 올해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상환 기한이 대거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오지민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2022년 이후 책임준공형 토지 신탁 사업장에 참여한 시공사가 부도·파산 선고를 받거나 건자재 조달 차질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공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시공사의 신용도가 낮은 사업장이 대부분이고 자재비와 금리 상승, 미분양 위험으로 우발채무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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