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개원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17일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투쟁 방안과 로드맵을 논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전일 레지던트·인턴으로 구성된 전공의 단체가 정부 결정에 반발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면서도 일단 집단행동 결정을 미룬 가운데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의협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정부의 의대 증원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며 강력 반발한다. 하지만 국민의 89.3%가 찬성하는 의대 정원 확대에 의사 단체가 나 홀로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서려는 움직임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직역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환자를 볼모로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만큼 “결국 의사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14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불합리한 의대 증원 추진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며 집단행동을 공식화했다. 전국 16개 시도 의사회는 이미 동시다발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전일 인천과 부산시의사회가 집회를 열었고 이날 오후 경기도의사회가 휴진하는 방식으로 시위에 나섰다. 15일에는 저녁 7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예고한 서울시의사회를 필두로 강원도·전라북도·제주도 등 전국에서 궐기대회에 나설 예정이다.
의료 대란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전공의 단체가 일단 단체행동을 유보했지만 이날 의협이 깃발을 들고 앞으로 나선 만큼 향후 의료계 움직임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4년 전인 2020년 7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 후 무려 20일이 지나 의협 등 의사 단체가 총파업에 나섰고 전공의의 무기한 총파업은 한 달여가 흐른 뒤 진행됐다는 점에서 현재 의료 현장은 폭풍전야 같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여러 차례 의료 대란을 경험한 정부 역시 전공의들에게 “환자의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의 단체행동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의료 총파업 당시 전공의의 파업률이 80%에 달해 의료 현장이 마비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은 4대 필수의료 패키지와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총망라돼 있다”며 “젊은 학도들을 포함한 의료인들과 소통을 강화해 집단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지금은 의료계를 둘러싼 제반 환경이 2020년 집단행동 때와 크게 다르다. 2020년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의대 증원’과 ‘지역·필수의료 분야 처우 개선’ 의견이 50% 대 44%로 팽팽하게 갈렸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보건의료노조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압도적인 국민 여론이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집단행동을 멈추라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에 이어 대한간호협회도 의대 정원 확대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간협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인은 어떤 순간에도 국민들을 지키는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준비하는 의사 단체에 의료인의 책무와 본분을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2020년처럼 정부가 의사 파업에 굴복하면 의사의 공급 부족으로 국민은 더 높은 의사 연봉을 부담하게 된다”며 “의료계가 파업에 나서면 단기적으로 환자의 피해가 발생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의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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