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회사인 엔비디아가 아마존을 제치고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4위 기업에 올랐다. 13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는 시가총액 1조 7816억 달러로 장을 마감해 불과 1년여 만에 388%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아마존을 넘어선 것은 22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초만 해도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시가총액(3860억 달러)에서 앞서 있었으나 그사이 엔비디아가 질주하며 가장 몸값이 높은 반도체 회사가 됐다.
엔비디아는 설립된 지 불과 31년밖에 안 된 ‘젊은 회사’다. 엔비디아의 창업자인 젠슨 황은 1999년 세계 최초로 병렬 컴퓨팅을 도입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내놓았다. 대규모 연산을 빠르게 할 수 있는 ‘가속 컴퓨팅’의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적중했다. PC게임, 암호화폐의 시대와 함께 엔비디아는 성장했다. 화려한 그래픽 구현이나 코인 채굴에 GPU는 필수적이다. 최근 엔비디아를 거대 반도체 기업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인공지능(AI) 열풍이다. 빅테크 고객들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을 줄 서서 사가는 상황이 됐다.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창업자가 7조 달러의 투자금을 모아 독자적인 칩 생태계를 꾸리려 한 것도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취지다. 경쟁사 AMD는 지난 연말 ‘괴물 AI칩’ MI300X를 대항마로 출시했다.
경쟁자들의 도전에도 엔비디아의 아성은 당분간 공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황이 주도하는 끊임없는 혁신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기존 주력 제품인 H100보다 2배 빠른 H200을 공개한 데 이어 올해 차세대 AI칩을 출시할 예정이다. 범용 AI칩 외에 기업 맞춤형 AI칩 설계를 위한 사업부도 새로 꾸렸다. 격변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조차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불과 2020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엔비디아를 앞섰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AI 물결에서 더 뒤처지면 뒤집힌 기업 가치의 격차는 영영 좁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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