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해외로 이주해 작품 활동을 하는 한국·한국계 작가들. 한국 진출 글로벌 화랑의 대표 주자인 리만머핀 갤러리가 새해 첫 전시로 선보인 한국 작가 그룹전 ‘원더랜드’다. 기억하고 싶은 과거를 비롯해 잊혀졌거나 사라진 옛 모습들이 작품에 녹아들었다. 전시에는 유귀미·임미애·켄건민·현남 작가가 참여했다.
해외 갤러리는 왜 ‘K-작가’들에 주목했을까. 글로벌 화랑들은 2016~2017년쯤 서울에 하나둘 진출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 2016년, 프랑스계 ‘페로탕 갤러리’가 종로구 삼청동에 문을 열었다. 뒤이어 뉴욕에 본사를 둔 ‘리만머핀 갤러리’가 2017년 종로구 안국동에, 그다음 ‘페이스 갤러리’가 한남동 이태원에 서울점을 개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조금은 잠잠해진 2021년, 외국 갤러리들이 다시 한국 진출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유럽의 명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으로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했다. 지난해 9월에는 영국계 화랑인 ‘화이트 큐브’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이에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Frieze)가 2022년부터 서울 개최를 선언해 서울이 명실상부 ‘글로벌 아트 시티’로 주목받게 됐다.
그런데 국내에 있는 해외 갤러리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해외 작가들을 소개하는 건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글로벌 화랑들은 ‘한국 미술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하나. 한국 작가를 발굴해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것이다. 리만머핀의 ‘원더랜드’는 그렇게 기획된 전시다.
서울경제신문 아트 뉴스 큐레이션 아트씽은 이번 ‘원더랜드’ 전에서 네 작가마다 꼭 봐야 할 작품 한 점씩을 선정했다.
◇켄건민, ‘1988-2021, 2023’
작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작가의 가장 특징적 작업 방식인 ‘자수’와 ‘비즈’다. 켄건민 작가 유년 시절이 반영됐다. 한국 태생 켄건민 작가는 어릴 적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의 할머니는 항상 비즈를 갖고 수공예를 했고, LA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비즈를 발견한 작가는 전통적인 회화에 비즈를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시대적인 비판 의식이 내재돼 있다. ‘원더랜드’ 전을 기획한 엄태근 게스트 큐레이터는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1988년, 작가는 올림픽 행사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작가는 88년 서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를 해부된 채로 죽어있는 호랑이로 그려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라고 설명했다.
◇현남, ‘Notketihkra(Irem), 2023’
‘원더랜드’ 전의 네 작가 중 가장 어린 현남 작가는 이미 국내 대중에게 많이 소개됐다. 그럼에도 과거 모더니즘 20세기 작가들을 오마주하며 미래 지향적인 도시 풍경을 조각으로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현남 작가의 메인 작품으로 꼽힌 이 아키텍톤 시리즈는 1920년대에 러시아 절대주의 화가로 유명한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의 아키텍톤 시리즈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20세기 초반에 ‘이상화된 건축 모델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됐다. 스티로폼처럼 우리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업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게 현남 작가의 특징이다.
◇임미애 ‘Molotov, 2023'
임미애 작가는 15살에 하와이로 이주해 한국을 떠난 지 약 40~50년 되어가는 이민 1.5세대 작가다. 하와이로 이주 후 필라델피아, 뉴욕 등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현재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초기 작품은 캐릭터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구상적이지만, 팬데믹을 지나온 현재는 색도 형태도 파편적인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도 파편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엄 큐레이터는 “디아스포라적인 경험이 작업 자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이번 전시에 포함하게 됐다, 파편성과 같은 복잡함이 임미애 작가의 노마드적 경험을 압축시킨 시각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유귀미 ‘Green Lake, 2023’
유귀미 작가는 한국 태생으로, 한국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넘어가서 공부하다 미국에 오랫동안 거주했다. 최근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의 작품은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기억과 향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할 때 자주 가던 공원의 모습으로, 작가가 간직한 소중한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원더랜드’ 전에 관한 엄 큐레이터의 설명은 서울경제신문 미술 전문 유튜브 채널 아트씽(Art Seeing)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전시는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이번달 2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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