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바이럴로 화제를 낳은 영화가 에머랄드 퍼넬 감독의 ‘솔트번’이다. #MurderOnTheDancefloor 해시태그를 사용한 영상을 봤다면 이미 영화의 결말에 노출된 거다. 소피 엘리스-벡스터의 ‘머더 온 더 댄스플로어’(2001)라는 디스코곡이 흐르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배리 키오건이 대저택을 누비며 무한의 자유를 만끽한다. 틱톡 챌린지 열풍을 일으킨 ‘솔트번’의 엔딩 장면은 영화 속 엘스페드(로자먼드 파이크)의 대사처럼 기괴한 ‘행복, 행복, 행복’을 온몸으로 표출한다. 느슨하게 느껴지지만 어수선하지 않은 배리 키오건의 절도 있는 몸짓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솔트번’은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한 시골뜨기 장학생 올리버 퀵(배리 키오건)이 귀족 자제인 펠릭스 캐튼(제이콥 엘로디)의 초대로 대저택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겪게 되는 인간의 이상 심리에 관한 영화다. 촬영지는 127개의 방이 있는 영국의 대저택 드레이튼 하우스. 1362년 건축된 찰스 라이오넬 스탑포드 색스빌 가족의 사유지가 ‘솔트번 에스테이트’로 처음 공개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대저택이 계급과 권력, 섹스가 충돌하는 공간적 배경으로 활용되며 영국 컨트리 하우스의 문화적 영향력을 다시 짚어본다.
지난 연말 버추얼 회견으로 만난 에머랄드 퍼넬 감독은 “모던 고딕 로맨스 장르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며 “드디어 어른이 되는 시기, 특정 연령대에 느끼게 되는 성적으로 끌리는 사랑, 전부 불태워 버리고 싶고 먹어 버리고 싶은 식인적 사랑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에블린 워의 소설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히치콕 영화 ‘레베카’(1940), 로지 감독의 ‘사랑의 메신저’(1971)를 언급한 퍼넬 감독은 “고딕 로맨스는 호러와 상통한다. 불안정한 정체성, 비합리적 욕망, 무언가를 물려받고 싶고 이어받기를 원하는 사악한 충동이 고딕 세계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숭배의 대상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사도 마조히즘적 관계를 탐구하며 혐오와 욕망 사이의 긴장감을 주시했다는 그녀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타인을 바라보며 흥분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고 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올리버가 저택 곳곳을 다니며 자유롭게 춤추는 장면에 관해서는 “즐거워 보이지만 모독의 행위이다. 소유권과 영역을 구축하는 행위로 벌거벗은 채로 집안을 활보하는 것만큼 그의 소유임을 드러내는 행위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작은 인형극장 위에 놓인 네 개의 돌을 만져 보고 사라지는 엔딩컷은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지만 매우 고독한 순간임을 명백히 하는 의도였다고 덧붙였다.
고딕 로맨스 영화 ‘솔트번’은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 상당히 많다. 올리버의 페티시즘까지 천연덕스럽게 연기한 배리 키오건, 펠릭스 캐튼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제이콥 엘로디, 펠릭스의 어머니 엘스페드가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유머의 매력을 극대화시킨 로자먼드 파이크 등 배우들의 연기가 몰입도를 높이지만 영화적 구조는 감독의 전작 ‘프라미싱 영 우먼’에 미치지 못한다.
퍼넬 감독은 “이 영화는 ‘뱀파이어 스토리’다. 그렇다고 올리버가 흡혈귀인 것은 아니다. 캐튼가 구성원들이 모든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는다. 그들은 늘 장난감을 찾고 있다. 그래서 올리버는 우리에게 영웅이다”고 독특한 시각을 내보였다. 이어 그녀는 “영화 속 올리버는 싫어하는 것에는 흥분하고 좋아해야 할 것에는 혐오감을 느낀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라고 묘사하며 “이 영화의 본질은 욕망에 관한 것으로 복잡하고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일종의 욕망과 그것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내밀하게 탐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라임 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솔트번’은 오는 18일 개최되는 제77회 영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5개부문 후보에 올라있다./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골든글로브협회(GGA) 정회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