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회연구방법론 중 가장 현장에 밀착돼 있는 연구방법론은 질적연구방법론 중 하나인 참여관찰법이다. 이는 공통된 문화적 특성을 이루고 있는 집단에 직접 참여해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연구 방식을 의미한다. 일본인의 심리를 분석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원주민 생태계를 통해 문명과 야만을 해부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등이 이 분야의 명저로 꼽힌다.
신간 ‘경계를 넘는 공동체’도 훗날 문화인류학의 고전으로 꼽힐 명저 중 하나다.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무려 6년 동안이나 한 지역에서 한 집단과 함께 생활하고, 20년 동안 추적 관찰한 끝에 도시사회의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해 냈다.
책은 1990년대 중국 베이징 저장촌을 주요 무대로 삼는다. 저장촌은 저장성 윈저우 출신 농민들이 집단 이주해 온 지역으로, 저자 역시 저장성 출신이기도 하다.
1980년대 단 6가구에 불과했던 저장촌은 10년도 되지 않아 10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계’(系)라는 공동체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계는 이론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기존의 사회학적 공동체 개념과 궤를 달리하는 개념이다. 계는 저자가 지칭하는 행위, 혹은 행위자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계의 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계총’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관계’를 의미하는 ‘꽌시’와도 유사하지만 좀 더 다층적이고,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는 등 유동적이다. 계는 가까운 친우간의 관계를 의미하는 친우권과 비즈니스적 관계를 의미하는 사업권으로 구분돼 있다.
저장촌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동대문시장의 의류 판매를 떠올려보면 좋다. 저장촌 사람들은 노점에서 옷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당시에는 노점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국영 상점 사람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저장촌 사람들의 계, 그 중에서도 사업권에 편입됐다. 이들 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이들의 계에 편입되고는 했다. 고도로 형성된 복잡한 관계에 다툼을 중재하는 거물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성장의 핵심은 친우권과 사업권의 균형이었다. 저장촌 사람들은 동향 사람들, 친척, 친구들에게 너무 깊이 연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공동체 외부에 있는 사업 파트너를 끝없이 사업권에 편입시켜 나갔다. 이 둘은 서로 견제하며 성장의 동인을 제공했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총이 일종의 신사회공간이 되어 사회문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개혁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거대 규모로 성장한 저장촌은 2000년 전후로 이전과는 크게 바뀌었다. 교통과 위생, 치안이 개선되고 무허가 건물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서 저장촌의 공동체 미덕은 사라져 갔다.
저장촌의 성장 동력을 내부에서만 찾았다는 점은 책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1990년대 중국의 성장을 설명할 때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은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러한 외부적 영향력을 간과한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독자가 개혁개방 정책과 중국공산당의 이념을 함께 조합해 책을 읽는다면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3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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