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도가 ‘고객 갑질’로 인한 업계 종사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례 제정에 나선다. 올해 안에 도 의회에 관련 조례를 제출할 계획으로 성사 시 지자체 최초 사례가 된다.
20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도쿄도는 고객이 기업 종업원에게 불리한 요구를 하거나 악질적인 괴롭힘을 일삼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카스하라(カスハラ) 방지 조례’를 만들기로 방침을 굳혔다. 카스하라는 고객 괴롭힘(customer harassment)의 일본식 영어(카스타마 하라스멘토·カスタマ-ハラスメント)의 약어다.
상공단체와 노조 대표, 대학교수, 도쿄도(都) 간부 등으로 구성된 도쿄도 검토위원회(검토부회)는 지난해부터 관련 논의를 이어 왔으며 이달 초 “(대책의) 조례화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도쿄도는 연내 도 의회에 조례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조례에 종업원을 갑질로부터 보호하는 기업 측의 책무를 규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금지 행위의 구체적인 사례는 별도로 만드는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다. 지나친 고객 갑질의 경우 강요죄 등 기존 형법 규정을 적용할 수 있어 조례에서는 위반자에 대한 처벌 내용은 따로 정하지 않을 전망이다.
도쿄가 지자체 차원의 조례까지 제정하고 나선 것은 최근 일본에서 고객 갑질로 인한 퇴사 및 피해 호소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엔 오사카의 한 식품회사에서 통신판매 업무를 담당하던 남성이 고객 폭언 등에 우울증으로 휴직한 뒤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이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내기도 했다. 타 도시 대비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은 도쿄에서는 대책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 최대 산업별 노조인 UA젠센이 2020년 서비스업 종사자 약 2만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최근 2년 내 고객으로부터 민폐 행위 피해를 봤다’는 응답은 56.7%나 됐다. ‘2시간 이상 폭언과 위압을 경험했다’, ‘승강이하다 갑자기 따귀를 맞았다’ 등의 사례가 나왔다. 후생노동성이 2020년 전국 8000명의 20~64세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에서도 15%의 응답자가 고객 갑질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갑질 유형으로는 ‘장시간 방해 및 같은 내용의 반복적인 문제 제기’(52%), ‘폭언’(46.9%), ‘금품·무릎 꿇고 사과 등 과도한 요구’(24.9%), ‘위협’(14.6%), ‘폭행·상해’(6.5%) 등의 순이었다.
이 같은 피해를 종사자의 정신 건강으로도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후생성 조사에서 피해 경험 응답자의 68%가 ‘분노, 불만, 불안을 느낀다’고 했고, 14%는 수면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4%는 병원 치료, 약물 복용 등의 상태였다. 2022년까지 10년간 고객 갑질로 인한 정신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례는 89명이었는데, 이 중 29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후생성은 지난해 우울증 등 정신장애의 산업재해 인정 기준을 재검토하면서 인과관계가 용인될 수 있는 구체 사례를 열거한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평가표’에 고객 갑질 내용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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