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할지 말지에 대한 의사 소견을 듣기로 한 날짜가 일주일 넘게 미뤄졌어요. 저는 죽니 사니의 문제인데...기다리라는 말 뿐입니다."
20일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현실화한 가운데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곽 모(59) 씨는 초조하게 예약 순번을 기다리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빅 5(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 병원 전공의들이 이날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함에 따라 각 병원은 ‘고요 속 혼돈’에 빠진 모습이었다. 진료과별 특성에 따라 의료진 공백의 여파는 상이했지만 환자들은 입을 모아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우려를 내비쳤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빅5' 병원에서 전반적으로 예약·접수·진료 시간이 미뤄지거나 담당 주치의가 변경되는 사례가 속출한 가운데 응급병동이나 암 병동 등 진료가 시급한 과의 경우 특히 큰 혼란에 빠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위암 수술 후 경과에 따라 추가 항암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곽씨는 "이유도 없이 소견을 듣는 날짜가 늦춰졌다는 전화를 받았다"면서 "2달 만에 15kg이 빠졌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빨리 알고 치료를 받고 싶은데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만 한다"고 울분을 표출했다.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서대문구 연세 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강원도민 A씨도 "전날 파업으로 대기가 길어진다는 예고 문자를 받고 걱정하며 왔다"면서 "아예 진료를 못 받게 되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응급병동 관계자 B씨 역시 "통상 구역마다 전공의가 1명씩 배치돼 3~4명이 일해야 하는데 지금은 전문의들이 이를 대신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 모(58) 씨는 "80대 아버님이 (파업으로) 심장 수술 날짜를 못 잡고 있다가 어젯밤에야 확정돼 오늘 아침 겨우 수술실에 들어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고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의 순환기내과에서는 "있던 진료도 뒤로 미루는 상황"이라며 아예 당일 접수를 거부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일부 진료과에서는 되레 썰렁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의 산부인과 외래 접수를 담당한 간호사 C씨는 "전날 미리 진료 연기 문자를 돌려서 평소보다 사람이 적은 것 같다"면서 "원래 3~400명이 오는데 오늘은 224명이 방문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환자가 ‘큰 맘 먹고’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 병원을 찾는 만큼 암 환자 등 진료가 간절한 경우를 제외하면 진작 내원을 포기한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이날 보건복지부 브리핑에 따르면 전국 병원에서 응급·당직 체계의 핵심을 맡는 전공의 6000명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주요 100개 수련병원의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이 중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금까지 총 831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상태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이날 정오부터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긴급 임시 대의원 총회를 개최했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공고문을 통해 기타 의료계 현안 등을 토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본격화됨에 따라 대응 방책을 논의한다는 취지다. 박 회장이 수련 포기를 결정하면서 전대협 비대위원장도 선출될 예정이다. 대전협에 따르면 사전 참가를 신청한 대의원은 약 100여 명이었지만 대의원 외 전공의들도 대거 참석 신청을 함에 따라 회의 시작이 10여 분 지연되기도 했다. 관계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 가량 더 온 것으로 추산한다”며 “가열된 분위기가 전공의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총회에는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도 참석한 가운데 대전협 측 성명서 발표 여부 등은 총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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