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에 대비해 미국 내 로비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재미일본대사관은 지난해 로비와 자문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회사 3곳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올 11월 대선 후 미국의 정책 동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추가된 계약 회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교류가 깊은 로비 기업 ‘발라드 파트너스(Ballard Partners)’, 미 의회의 흑인 의원 연맹과 가까운 ‘더 그룹 DC’,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가들이 세운 ‘웨스트윙 라이터스(West Wing Writers)’다. 이로써 주미일본대사관이 계약한 로비 기업은 총 20개사가 됐다.
발라드 파트너스는 대표인 브라이언 발라드가 트럼프와 30년 가까이 교류를 가져온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018년 트럼프 정권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스트로 그를 꼽았다. 발라드 파트너스는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미국 수도 워싱턴에 사무소를 열고 세를 불렸다. 이 회사는 지난 7년간 20여 개 나라에 자문을 제공했다. 발라드 대표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제일(America First)’로 미국의 동맹국이라면 트럼프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면서도 “필요한 돈을 내지 않고, 미국이 필요할 때 협력하지 않는다면 트럼프는 각국이 다루고 싶은 의제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일본제철의 미 철강 대기업 US스틸 인수를 둘러싸고 미국 내 로비 활동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 중이다. 일본제철이 지난해 말 US스틸을 14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뒤 미 정치권과 전미철강노조(USW)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최근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산업화의 상징인 US 스틸 매각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며 이 문제를 선거 쟁점화하고 나섰다. 주미일본대사관은 당초 지난해 4월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의 방일 당시 이를 지원하기 위해 발라드의 로비스트 팀과 계약했지만, 이후 초점이 트럼프로 옮겨간 젓으로 전해졌다.
닛케이는 또한, 워싱턴의 다른 대사관 관계자를 인용해 최근 일본이 트럼프과 관계 깊은 여러 미국 싱크탱크 및 전직 관리들에 접촉해 ‘중국과 거래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웨스트윙 라이터스를 통해 연설문 작가를 고용한 것 역시 “일본의 메시지를 맞춤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대사관은 웨스트윙 라이터스로부터 1년에 6회 대사의 연설문 작성 서비스를 제공 받기로 했다.
이 같은 로비 활동 강화로 관련 비용도 늘었다. 미국 조사 사이트 ‘오픈 시크릿’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련 미국 내 로비 활동 지출액은 지난해 4934만달러(약 660억원)로 전년 대비 13.4% 늘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인 2015년과 비교하면 무려 82.5% 늘어난 수치다. 발라드 파트너스에 지급하는 비용은 월 2만5000달러 수준이며, 일본 대사관이 수십년에 걸쳐 관계를 다진 다른 로비 기업에도 월 약 1만5000달러의 수수료를 낸다. 엔화 약세와 더불어 요금이 최근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어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시크릿은 로비 업체가 외국 대리인 등록법에 따라 미국 법무부에 제출한 반기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통계를 작성한다.
한편 오픈 시크릿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 정부의 미국 로비 지출 비용은 1208만 달러로 전년 대비 55.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닛케이는 일본의 적극적인 로비 동향을 언급하며 “이 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접촉에 소극적인 스탠스(low-key stance)를 취해 온 한국과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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