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1노총인 한국노총이 올해도 소속 조합원들에게 임금인상분 일부를 임금불평등 완화에 쓰자는 ‘연대임금’을 제안한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스스로 이익 일정 부분을 양보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 노조 스스로 나설 만큼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임금격차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올해 연대임금 조성분 1.5%를 반영해 임금인상요구율을 8.3%로 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요구율은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상을 할 때 활용할 가이드라인이다.
한국노총이 임금인상요구율에 연대임금 조성분을 반영한 것은 2020년부터다. 2020년 2.6%, 2021년 2.6%, 2022년 3.2%를 결정했다.
한국노총이 제안하는 연대임금 활용방안은 사용자가 근로자 임금을 올려주면 이 근로자가 인상분 일부를 다시 양보하는 번거로운 방식이 아니다. 공동(사내)근로복지기금 조성이다. 이 기금은 사업주가 사업이익 일부를 재원으로 마련하는 기금이다. 이 재원이 사실상 연대임금이 되는 것이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이 안착된 대표적인 기업은 SK이노베이션이다. 기금 조성은 사측과 직원뿐만 아니라 정부도 돕는다. 그 결과 2018년부터 올해까지 기금이 협력사를 지원한 규모는 약 200억 원에 달한다. 하나은행과 교보증권, 현대자동차도 기금을 통한 활발한 상생 활동을 편다.
한국노총이 연대임금을 제안한 이유는 노동시장의 임금불평등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작년 11월 발표한 비정규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정규직 임금이 100일 경우 비정규직의 임금은 53.9에 그쳤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약 906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41.3%로 조사됐다. 이런 임금 격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매 정부는 한국노총의 연대임금처럼 다양한 상생 정책을 폈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항공우주 제조업계의 원·하청 상생협약을 도왔다. 조선업, 석유화학업, 자동차업에 이어 네 번째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원·하청 상생은 규제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협력이 실현되고 관행화될 때 지속가능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연대임금이 얼마나 활성화될 수 있을지다. 한국노총의 임금인상요구율을 강제가 아닌 가이드라인이다. 실제 임금인상폭은 이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 이 경우 임금인상분에서 연대임금으로 넘길 이익이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이 작년에는 고물가에 따른 임금인상폭 상승을 고려해 일시적으로 연대임금분을 요구율에 반영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연대임금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커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전체 노조원 중 약 80% 비중으로 노조 지형을 양분한다.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쏠려있다.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상대적으로 임금 규모가 큰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국노총 측은 “노조는 조합원의 이해 대변을 넘어 사회운동의 정체성도 요구받는다”며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노동계급 내 연대 강화를 위해 연대임금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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