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가 국민연금을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도록 구세대와 신세대 간 연금을 분리하자는 국책 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강구·신승룡 연구위원은 21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 구조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새로 적립하는 ‘신(新)연금’은 보험료와 적립 기금의 운용 수익만큼만 연금으로 돌려주되 ‘구(舊)연금’에서는 일반 재정을 투입해 부족분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KDI는 당장 개혁해도 구연금 재정 부족분의 현재 가치가 609조 원에 이르고 5년 뒤에는 869조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연금 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현 세대의 빚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지 말자는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현행 제도의 근본 문제는 기존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아간다는 점이다.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하 또는 현행 유지 등 현재 논의되는 모든 ‘모수’ 개혁 시나리오도 누적 적자를 줄여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미래 세대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연금 개혁은 어느 정부에서나 추진하기 힘든 과제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정부와 국회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핑퐁 게임’을 거듭하더니 1월 말에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본격 활동에 돌입했다. ‘모수’ 합의도 버거운 판에 이원화 논의까지 더해지면 연금 개혁이 더 표류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더 내는’ 연금 개혁부터 성공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론화위는 약속대로 국민 여론을 반영한 최종 보고서를 도출해 4·10 총선 이후 연금특위에 조속히 제출해야 한다. 이후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까지 한 달 반의 시간이 마지막 골든 타임이다. 정치권의 부담이 적은 이 시기를 놓치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연금 개혁이 물건너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뚝심을 갖고 연금 개혁이 국가의 미래가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면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여야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나라 미래를 위해 초당파적인 협력에 나서야 한다. ‘연금 이원화’는 추후 신중히 검토해도 늦지 않다. 그 기회에 공무원 등 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폐합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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