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가 1980년대 ‘거품경제’ 시절의 대기록을 깰 수 있었던 것은 환율과 기업 체질 개선, 미국 시장 강세 등 대내외 긍정적인 재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이다. 이 같은 기초 체력 위에 이날 엔비디아의 호실적이 더해지며 34년간 ‘호시절의 기록’으로 남아 있던 3만 9000의 벽을 뚫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닛케이225지수는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1989년 말 사상 최고를 찍었지만 일본 경제 전반에 들어 있던 자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하락의 길을 걸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에는 7054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아베 신조 내각이 초완화적 통화정책 등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부터 서서히 회복세를 이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28% 상승했고 올해 들어서도 16% 넘게 뛰며 ‘회복’을 넘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증시 강세의 원인으로는 엔화 약세(엔저)에 따른 외국인 매수세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엔·달러 환율은 22일 현재 달러당 150엔 선에서 형성돼 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일본은 통화 완화를 고수하면서 미국과 금리 차가 부각된 탓이다. 환율 수혜에 힘입어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도요타가 수출 채산성 개선으로 실적이 크게 늘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해 일본 종합상사 지분을 늘리는 등 일본 증시의 매력을 언급한 것도 긍정적이었다. 중국 증시 약세에 지친 투자자들이 일본을 대안으로 삼으면서 반사이익도 누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투자가들은 일본 주식을 3조 1000억 엔 순매수했고 올해도 순매수 규모가 2조 엔을 넘는다. 주가순자산배율(PBR) 1 미만인 기업에 대해 자사주 매입, 비생산적 상호출자 청산을 요구하는 등 기업 거버넌스 개혁 움직임도 지수에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서는 지수의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전망치 상향이 잇따르고 있다. 씨티그룹은 연말 지수 전망을 3만 9000에서 4만 5000까지 올렸고 야마토증권도 기존 3만 9600에서 4만 3000으로 높였으며, 노무라증권도 연말 전망치를 4만으로 변경했다.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이 엔화 가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당분간은 완화적인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다. 바수 메넌 싱가포르 OCBC은행의 매니징디렉터는 “일본 주식의 경우 수출 기업 외에도 대형은행, 생명보험사, 관광 등 주가 회복이 매력적인 내수주들이 있다”며 “최근 외국인 매수세를 부른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 펀더멘털 개선도 이어진다면 (상승) 모멘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 기업 전반을 포괄하는 토픽스지수는 여전히 사상 최고치보다 8.5% 낮은 상태다. 물가 상승이 가팔라 주가 상승의 체감도가 낮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데 신고 NLI연구소 최고주식전략가는 “미국 경기의 급격한 둔화 전망이 힘을 얻으면 미국 증시는 떨어지고 엔화가 급등한다”며 “이 경우 일본 증시도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고점 돌파에 정재계도 고무된 분위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관저에서 취재진과 만나 "지금 일본 경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국내외 시장 관계자가 평가해 주고 있는 것을 든든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이러한 움직임을 정착시킬 수 있을지 (결정할) 승부의 해"라며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탈피를 위해 민관의 노력을 가속화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수장인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도 “국내외 자금 유입과 기업 실적 호조에 따른 결과”라며 “일본 경제의 흐름이 변화한 것도 고려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