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 시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임계점(tipping point·티핑 포인트)에 도달했다”며 “세계적으로 기업·산업·국가 전반에 걸쳐 AI 칩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4분기 매출 221억 달러에 주당순이익(EPS) 5.15달러로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었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황 CEO의 이 같은 발언은 AI 수혜가 단지 엔비디아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 등 AI와 관련한 글로벌 산업계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22일 뉴욕 증시의 3대 지수를 비롯해 독일·프랑스·대만·일본 등 전 세계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도 이러한 기대감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실적 호조가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를 밀어올리고 이로 인해 글로벌 주가지수가 치솟고 있는 형국이다.
엔비디아의 영향력이 미국 인플레이션 지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씨티은행은 엔비디아의 이번 실적 발표가 미국의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전까지 가장 큰 증시 이벤트라고 평가했다. 노무라증권의 디렉터인 탈리 맥엘리고트는 “엔비디아의 후광효과는 최근 몇 개월간 거의 혼자서 미국 증시를 지탱하는 수준이 됐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AI 기대감에 묻히는 분위기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대 리스크는 금리를 너무 일찍 낮추는 것”이라며 “이 경우 인플레이션이 재상승해 지난 2년간의 긴축 작업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리 인하가 가까이 있다는 기대를 일축한 발언이지만 증시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 연준 2인자인 필립 제퍼슨 부의장 역시 “통화정책을 과도하게 완화하면 가격 안정 추세가 지연되거나 뒤집힐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연준의 1월 FOMC 의사록조차 (엔비디아 실적 앞에) 무색해졌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월가에서는 AI 수요 확대가 입증되면서 미국 증시가 연준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상승 동력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JP모건체이스의 미국시장정보 헤드인 앤드루 타일러는 “매그니피센트7(7대 기술 업체)은 금리 환경과 관계없이 수익 기대치를 충족시킨다는 점을 증명했다”며 “엔비디아의 실적 상승세는 미국 증시 상승의 새로운 촉매제일 뿐 아니라 주식시장이 금리 환경과 점점 더 디커플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와 AI 빅테크들의 영향력이 과도해질수록 증시 불안정성이 커진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2% 이상 상승할 경우 최소 90% 이상의 종목이 상승하지만 이날은 73%의 기업만이 올랐다. 베어드의 전략가인 테드 모트슨은 “(정보기술 버블이 일어났던) 2000년대처럼 증시의 펀더멘털과 가격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며 “뉴욕 증시는 이제 카지노이며 이름을 나스닥에서 (스포츠 결과 내기 사이트인) ‘드래프트킹’으로 바꾸는 게 나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관건은 미국 경제가 증시를 계속 떠받칠 수 있느냐다. 찰스슈와브의 디렉터 조 마촐라는 “긍정정인 경제지표로 침체 우려는 극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늦어지고 소비가 둔화되는 점을 지적하며 거시경제 불안이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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