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려는 마음은 있죠.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 정책을 즉시 백지화하고 지금 고통받는 환자들을 생각해서라도 학계와 환자들과 전공의들의 의견을 들어서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충분한 숙의를 거쳐 다시 한번 대화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병원을 떠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밤 10시 기준 전국 100개 수련병원에서 9275명의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는 전체 전공의의 71%가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은 왜 수련 도중 병원을 떠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앞서 지난 16일 가톨릭중앙의료원(CMC)에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류옥하다(25) 씨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진심으로 전공의들과 대화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될지 우려된다”면서 “예전의 파업은 복귀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사직이어서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직 전공의인 류씨는 대전성모병원에서 인턴 생활 중 응급의학과를 지망했다. 그는 “저는 지역에서 자라 지역 필수 의료를 위해 사명감으로 봉사하겠다던 사람”이라며 “사명감 있는 사람들조차도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 발표 이후) 모욕감을 받으면서 ‘그러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다른 일 하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씨는 지난 1일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패키지 정책이 잘못됐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필수의료패키지 지원 예산 10조 원이 추상적이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불완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의료 사고 발생 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에 대해 공소 제기를 제한해 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특례 적용 범위에 사망 사고와 미용·성형 포함 여부는 논의 중이다.
류씨는 “성형은 사실 접합과 꿰매는 수술을 담당한다. 이런 성형외과 의사를 제외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사망 사고 포함 여부도 논의하고 있다는데 처벌받을 걸 아는 이상 누가 (환자를) 살리려고 하겠나. 경찰서를 가는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대해서도 “구조적인 개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원하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시나리오 중 여러 변수를 대입하면 의대 정원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저도 저출생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류씨의 주변 전공의 중에는 의사가 아닌 꿈을 찾거나 취업 현장에 나선 이들이 많다고 했다. 류씨는 “어릴 때 꿈이었던 음악가나 화가를 준비하거나 다코야키 트럭을 알아본 사람도 있다”며 “이민을 준비하거나 실제 인공지능(AI) 면접을 본 사람,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고 전했다.
류씨도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의사 가운을 완전히 벗고 지역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그는 “어릴 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지 않고 모내기를 하면서 산 마을에서 지냈다”며 “저는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했고 잠시 쉬고 있지만, 정부가 이번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삼도봉 아래로 농사를 지으러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면허 박탈 등 행정처분을 언급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3일 JTBC에 출연해 “정부의 대응 방침은 확실하다. 잘못된 행동에 합당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의 대응에 대해 류씨는 “다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희에게는 헌법이 부여한 기본 권리인 강제 노역을 받지 않을 권리,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서 “애초에 전공의들은 수련의인데 이들이 그만둔다고 병원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자체가 시스템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류씨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병원을 나올 때 가장 눈에 걸렸던 것은 제가 매일 찾아뵙던 환자분들이었다”며 “그럼에도 저희는 이 정책이 시행되면 의료가 붕괴하고 미래 수만 수십만의 환자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사직을 결심하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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