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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위기감에 시작된 극비 프로젝트…日 정부 돈 풀고 도쿄대·소니도 지원사격

■대만 TSMC 반도체 공장 日에 개소…유치 막전막후

50% 달하던 점유율 10%로 뚝

"생산기지 없으면 끝" 위기감에

日정부 1·2공장에 11조원 지원

도쿄대 외교 특사로 협상테이블

TSMC 창업자-소니 친분도 한몫


“일본 반도체 생산의 르네상스(부흥)가 시작됐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모리스 창 창업자는 이달 24일(현지 시간)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열린 ‘TSMC 제1공장 개소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국내 생산 기반 정비를 위해 전례가 없는 대담한 지원을 하고 있다”며 제2공장에 최대 7320억 엔(약 6조 5000억 원)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1공장 지원금(약 4조 2000억 원)을 포함해 외국 기업에 무려 11조 원의 돈 보따리를 풀기로 한 것이다.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이 24일(현지시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기쿠치구 기쿠요에서 열린 'TSMC 제1공장 개소식' 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과 대만이 손잡고 완성한 TSMC 구마모토 공장이 중국 반도체를 견제하는 한편 서구 진영의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닛케이는 구마모토에서 양산하는 반도체를 ‘성숙기 제품’으로 지칭하면서 “성숙기 반도체는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20∼30%를 점유하고 있다”며 “중국이 이 분야에서 존재감을 높이면 반도체가 경제안보 관점에서 ‘카드’가 될 우려가 있는데 구마모토 공장이 성숙기 반도체를 공급하면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한미일로 이어지는 글로벌 삼각축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 공습을 막아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평가다.

일본이 TSMC 공장을 유치하게 된 배경은 2018년 1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2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당시 경제산업성의 정보산업과(반도체 산업 소관) 과장이 일본 반도체 산업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한때 전 세계 점유율 50%에 달했지만 당시 1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 산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일본 땅에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어야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일본 정부 차원에서 거액의 보조금을 투입해 해외 첨단 반도체 업체를 일본 안으로 끌어오자는 프로젝트가 마련됐다. 코드네임은 자본 지출을 뜻하는 ‘CAPEX(캐펙스)’였다.

해당 정책을 마련한 과장과 정책 구상을 담당한 실장, 과장보좌관이 각각 반도체 장비 연구개발(R&D)에 관여하거나 공학 박사를 취득하는 등 반도체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는 점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동력이 됐다.

니시야마 게이타 당시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장은 갈수록 첨예화하는 미중 갈등과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했고 해당 프로젝트가 베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앞서 2015년 소니와 파나소닉·재팬디스플레이(JDI)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개발 부문을 통합시켜 ‘JOLED’라는 국책기업 설립을 주도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도쿄대는 정부가 극비리에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발맞춰 외교 특사로 나섰다. 도신 마코토 총장은 2019년 초여름 TSMC의 웨이저자 최고경영자(CEO)가 일본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경제산업성 각료들과의 협상 테이블을 극비리에 마련했다.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이후 교섭이 이어졌지만 2020년 5월 TSMC가 미국 애리조나 진출을 전격 발표하면서 논의는 중단됐다. 당시 중국 화웨이에 규제를 강화하며 중국과 무역 갈등을 겪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일말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경제산업성은 그동안 신중하게 접근했던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법 개정을 통해 가능하게 하면서 TSMC 유치에 적극 나섰다.

이런 가운데 TSMC와 인연이 깊은 소니가 전면에 나서며 TSMC의 일본 진출이 성사됐다. 2021년 타이베이의 호텔을 찾은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회장이 웨이저자 TSMC CEO로부터 지원을 부탁받았던 것이다. 요시다 회장은 24일 “반도체 조달에 대해 논의할 생각으로 나갔지만 ‘일본에서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 협력해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소니는 TSMC 일본 공장 운영을 위한 자회사인 ‘일본첨단반도체제조(JASM)’에 6%를 출자하고 직접 직원들을 보내 공장 개소를 도왔다. 소니는 2001년부터 구마모토 공업 단지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 바로 옆에 TSMC 제1공장이 들어섰고 2027년께 제2공장도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다.

모리스 창 창업자는 제1공장 개소식에서 1999년 타계한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와의 각별한 인연을 밝히기도 했다. 1968년 당시 세계 최대 집적회로(IC) 업체였던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간부였던 모리스 창이 일본 합작회사를 설립할 때 경제산업성의 경계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를 도와준 것이 바로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아키오와 이후카 다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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