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26일 공개했다. 프로그램의 골자는 기업들이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세우고 이행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그동안 시장의 기대가 컸던 데 비해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초 거론됐던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시 법인세 혜택 등의 구체적 방안은 더 검토하기로 했다. ‘밸류업 모범 기업’에 대한 표창장 수여, 상장지수펀드(ETF) 연내 출시 등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낮은 유인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일본보다 인센티브가 많다”고 했지만 기업들을 움직일 수 있는 확실한 인센티브는 눈에 띄지 않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면 정부가 문제의식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기업의 중장기 성장성이 떨어지고, 실적이 나아져도 주주 환원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이번 방안에서 주주 환원을 강화하도록 기업들을 유인한다는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업의 성장성과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근본 처방은 여전히 부족하다. 기업의 중장기 성장성이 결국 주가 상승의 원동력임은 최근 전 세계 증시를 출렁이게 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반도체 투자가 선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국·일본은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겹겹 규제와 빈약한 지원으로 글로벌 AI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제기된 한국의 증시는 잠잠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공유숙박·승차공유·원격의료·로보택시 등 신산업에서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들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정치권의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 밸류업 프로그램은 대증요법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규제 혁파와 전방위 지원으로 기술 초격차를 확보하고 신성장 동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밸류 트랩(가치 함정)’에 갇힌 한국 증시를 구할 방법이 요원하다. 또 무한 정쟁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법치주의 등 헌법 가치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정치를 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의 경제팀 역시 일관된 정책 집행으로 기업들이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 등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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