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강남역 일대 침수와 같은 크고 작은 사고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놓쳤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안전 불감증은 우리 사회의 만연한 질병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더 많은 설마가 우리를 덮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 불감증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과학적 진단과 예방 중심 관리로 전환하는 것이다. 미국의 보험회사 감독관이었던 하인리히는 1건의 중대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29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건의 지나치기 쉬운 징후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이 바로 1:29:300 법칙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사고 발생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 심리학자 제임스 리즈는 ‘스위스 치즈 모델’을 통해 사고 발생의 다중적 인과관계를 설명했다. 스위스 치즈같이 여러 개의 구멍이 겹쳐지면 치즈 전체가 뚫리는 것처럼, 여러 개의 안전장치가 동시에 실패하면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치즈 모델은 사고가 조직적 문제와 시스템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가 국토교통부 차관을 지냈던 시절 많은 철도, 항공, 건설 사고들을 경험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고는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기본적인 수칙 준수의 소홀 등으로 인해 발생했다. 따라서 안전불감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고 발생 배경의 복합적 요인을 분석해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예방 중심의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안전 선진국은 높은 신뢰 자본을 기반으로 한다. 정부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공개, 안전 관련 제도 개선과 시스템 구축,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통해 신뢰 자본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위험 요소를 분석해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첨단 기술,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면 재난 예측, 안전 교육, 사고 예방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디지털트윈을 활용해 하천 모니터링, 침수 예·경보, 해안도로 침하 예측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전은 국가 경쟁력이다. 안전 선진국은 높은 신뢰 자본, 첨단 기술을 활용한 신속한 재난 대응, 그리고 고질적 안전 불감증 척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안전에는 타협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국가와 공공이 사회에 신뢰자본을 쌓고 골든아워를 확보하는 유일한 일이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은 더 이상 있으면 안 된다. 과학적 접근을 통해 안전 불감증을 척결하고 안전 선진국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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