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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성별 언제든 알 수 있다…헌재, 고지 금지 의료법 ‘위헌’

남아선호 사라져 입법취지 무색

최근 10년간 관련 처벌도 없어

"부모 권리 필요 이상으로 제약"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신 32주 전에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을 진찰·검사해 가족 등에게 알려주는 것을 금지하는 현행 의료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해당 조항이 즉시 무효가 되면서 임신부 등은 임신 주수와는 상관없이 태아의 성별을 의료진에 문의할 수 있게 됐다.

헌재는 28일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과거와 달리 남아 선호 사상이 확연히 사라지면서 ‘태아 생명 보호’라는 입법 취지가 무색해진 데다 최근 10년 동안 처벌 사례도 없어 규제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취지다. 9명 전원은 의료법 20조 2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다만 재판관 3명은 위헌 결정보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국회에 개선 입법 시한을 줘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이번 결정에서 다수 의견을 낸 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비롯한 모든 정보에 접근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은 건 당연히 누리는 본질적 권리에 해당한다”며 “이는 일반적 인격권에 의해 보호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밝혔다.



최근 10년 동안 해당 조항을 위반해 검찰에 고발·송치되거나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한 건도 없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았다. 오랜 기간 의료법상 명시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해당 조항이 ‘행위규제규범’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료법에서는 20조 2항을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면 이종석 소장과 이은애·김형두 재판관은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 없이 허용하기보다는 32주라는 현행 제한 기간을 앞당기는 게 맞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성별을 이유로 낙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기간을 단축하는 등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법적 부부인 A 씨와 B 씨 등이 의료법 제20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해당 조항에서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신부나 가족 등에게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것이 이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권과 행복추구권, 의료인의 직업 수행 자유 등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헌재는 앞서 2008년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듬해 임신 32주가 지나면 성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대체 법안이 입법됐다. 하지만 저출산이 심화되고 남아 선호 사상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데 따라 부모의 ‘알권리’를 위해 태아의 성별 고지를 보다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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