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4·10 총선을 불과 41일 앞둔 29일에야 국회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오리무중 선거판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 그동안 출마할 ‘선수’와 투표할 ‘관중’은 이미 모였는데 정작 경기를 치를 링과 룰(rule) 결정이 계속 미뤄져 혼란을 초래해왔다. 여야는 17대 총선 당시에도 선거일을 불과 37일 남기고 선거구를 결정하는 등 툭하면 지각 획정을 일삼았다. 여야가 이번에는 ‘최장 지각 획정’이라는 오명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선거구를 선거일 1년 전까지 결정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오점을 남겼다.
선거구가 뒤늦게 획정된 것은 여야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출한 획정안에는 인구 변화를 감안해 경기 부천, 전북의 의석수를 1석씩 줄이는 선거구 합구안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반발하면서 서울 강남구, 부산 등에서 1석씩 줄일 것을 요구하자 국민의힘이 수용을 거부해 평행선을 달렸다. 여야는 결국 선거일에 임박해서야 기존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에서 1석을 줄여 10석의 전북 지역구 의석을 유지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부산의 현행 의석수도 유지하기로 했다. 양대 정당이 서로 ‘텃밭’을 지켜주는 ‘나눠먹기 딜’을 하느라 출마 준비자들과 유권자들의 혼선을 증폭시키는 일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선거구 획정 지연은 헌법과 공직선거법상 선거권·피선거권의 행사를 저해하는 국회의 태업이자 직무 유기다. 이 같은 지연 사태를 차단하려면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 특히 선거구 획정 시한을 어기는 정당에 정당보조금 감축 등의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거구 간 과도한 인구 편차도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조정해가야 한다. 독립적 기구인 선거구획정위가 최적안을 낼 수 있도록 전문 인력과 예산 등의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이를 통해 도출된 합리적 획정안이 여야의 기득권 지키기 다툼에 누더기가 되지 않도록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획정안 수정 범위를 제한해야 할 것이다. 여야는 앞으로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선거일 1년 전 선거구 획정’ 규정을 꼭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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