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공백이 3주째를 맞이한 가운데 새롭게 의료 현장에 투입돼야 할 인턴·레지던트들까지 임용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대신 업무 공백을 채우고 있는 전임의들도 장기화하는 의료대란에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탈 행렬에 동참하는 등 의료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시 내 주요 수련병원은 매년 3월 들어와야 하는 새로운 인턴과 레지던트가 없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다. 인턴과 레지던트 1년 차 모두 이달 1일 자로 각 병원에 신규 인력으로 수혈돼야 하지만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후 이들마저 병원으로 오지 않으면서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레지던트 1년 차로 임용 예정이던 인턴과 인턴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던 의대 졸업생들의 90% 이상이 임용 포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서울시 내의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지금 교수와 전임의들이 전공의들의 업무를 메우고 있지만 새로운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들어오지 않는 이 상황에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며 전공의의 의료 공백을 채우던 전임의들도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탈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남대병원은 52명 신규 전임의 임용 대상자 중 21명이 최종 임용을 포기했다. 기존 전임의 대부분이 퇴직하는 대신 신규 전임의가 3월부터 충원돼 근무하기로 했지만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전공의 4년 차들이 전임의 임용까지 포기하면서 전임의 정원 40%가 한꺼번에 비었다.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등 상급종합병원 상황도 점점 악화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계약하려고 했던 전임의의 절반 정도가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빅5 병원에서도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나 전임의 이탈률이 상승할 경우 수술 취소율이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운영마저 파행을 겪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응급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응급 환자마저도 부분적으로만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전임의들의 재계약률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며 계속 모니터링 중”이라며 “어떤 기관은 전임의들이 100% 가깝게 재계약하고 1명도 재계약하지 않은 기관도 있는 등 기관마다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는 50개 수련병원에 대한 현장 점검을 통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를 대상으로 면허정지 처분 등 행정절차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8945명(전체의 72%)이었다. 정부는 총 7854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받은 상태다.
박 차관은 “정부는 현장을 점검해 위반 사항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장을 이탈한 인원에 대해서는 면허정지 처분 절차에 들어간다. 이 처분은 불가역적”이라며 “오늘 점검에서 부재가 확인되면 내일 바로 행정처분 사전 통보를 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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