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1학년 때 제 알람은 오전 8시, 8시 5분, 8시 10분마다 울리도록 맞춰 놨었어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출근해야 하니 마지막 알람이 울리면 전 ‘폭발’하는 거죠. 한 번은 아이가 그러더라구요. ‘엄마 우리 학교 가는 알람이죠’라구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엄마로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요.”
아동용서적 출판회사 키즈스콜레에서 일하는 18년차 워킹맘 직원이 7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 직원이 미안했던 아이는 올해 4학년이 됐다. 이 직원은 키즈스콜레로 직장을 옮긴 후에야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많이 덜었다고 한다. 키즈스콜레는 전 직원이 오전 11시까지만 출근하면 된다. 오전 9시 출근이 일반적인 우리나라 직장 문화에서 ‘아침 2시간’은 이 직원의 아이에게 잃었던 ‘엄마와 시간’을 찾아줬다. 이 직원은 “지각이 없는 회사기 때문에 이제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며 “아이 아침을 챙겨주고 출근한다, (오전 11시 전에) 일찍 출근하는 날은 일찍 퇴근해서 아이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과 근무시간으로 직원을 규율하려는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서 키즈스콜레의 ‘오전 11시 출근제’는 상상하기 어렵다. 키즈스콜레는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으로 규율을 만들었다. 늦게 출근하는 대신 직원들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중근무를 하기로 약속했다. 근무시간이 아니라 근무의 질로 평가받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장관이 사무실을 둘러볼 때 자신의 일에 빠져 이 장관에게 인사하지 않는 직원도 많았다. 키즈스콜레 관계자는 “출근시간을 오전 11시까지 정한 대신 11시에서 1분만 지나도 지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키즈스콜레의 이런 문화는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기업이 진짜 가능한가’란 표정으로 간담회 내내 키즈스콜레직원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 이 장관은 “정말 오전 11시까지 정하고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출근하는 형태인가”라고 되물으며 메모지에 근무시간을 적어 계산하는 듯 보였다. 통상 시차출퇴근제는 30분, 1시간씩 출근시간 구간을 정하기 때문이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고용부 관계자도 “이 기업처럼 자율형 시차출퇴근제를 하는 곳은 처음 방문해본다”며 “시차출퇴근제도 중 가장 좋은 제도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키즈스콜레의 출퇴근제는 수평적인 직장 문화를 만들었다는 게 더 큰 장점일 수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서로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였다. 직원들은 회사 업무량이 많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 방식이 훨씬 낫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석 직원은 “제 인생에 중요한 것은 돈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도 “나에게 업무가 늘어날 수 있어도 동료의 휴가를 당연하게 여기면, 내가 휴가를 쓸 때 그 직원도 같은 마음이 될 것”이라며 키즈스콜레의 유연근무제 못지 않고 사내 문화를 놀라워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하형소 서울고용지방고용노동청장도 “사업장의 문화는 사람 간의 신뢰와 중간관리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부에 바라는 것 보다 자신의 직장 생활을 자랑하고 싶은 게 많았던 직원들의 현장 간담회였다. 여기에 ‘이 장관의 호기심’이 더해져 1시간으로 예정됐던 간담회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30분 더 이어졌다.
하지만 키즈스콜레와 같은 기업은 현실에서 찾기 쉽지 않다. 정부 조사와 노동시민단체 설문들을 보면 여전히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조차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고용부 조사에서 작년 육아휴직자는 12만6008명으로 전년 대비 3.9%(5076명) 감소했다. 육아휴직을 쓸 경우 소득 감소, 대체 인력 구인난, 동료 업무 가중, 복귀 후 불이익 우려 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연 기념 대회의 핵심 구호도 열악한 여성 노동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다른 우려는 저출생 문제 해결이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복지 격차 확대다. 최근 부영이 출산 직원에게 1억원 규모 출산장려금을 주겠다고 해 관심을 끌었다. 최근 정부는 출산장려금 전액을 비과세하는 방식으로 이 노력을 화답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부영처럼 재원이 부족한 대다수 중소기업 입장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키즈스콜레도 아동출판업계에서 유명한 기업이지만, 직원 40명이 일하는 중소기업이다. 서명지 키즈스콜레 대표는 “출산장려금 1억원 기사를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며 “우리처럼 (1억원을) 줄 수 없는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란 고민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 보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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