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18일째 진료현장을 떠나면서 의료공백이 확산하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도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달라고 신청한 대학을 중심으로 시작된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전국적으로 번지면서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선언하는 의대 교수들이 늘어나면서 의료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9일 비공개 총회를 열어 정부의 의대 증원 등 현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각 의대별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최근 의료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안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이 포함된 울산의대 교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전일(7일) 3개 수련병원 교수 254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긴급 총원에서 전 교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에는 서울아산병원 외에도 울산대병원·강릉아산병원 임상교수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전 교원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접수 방안과 일정 등을 논의 중이다. 앞서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가 지난 5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울산의대 교수의 79%가 겸직해제 또는 사직서 제출에 동의했다. 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임상교수 중에서도 74%가 사직서 제출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의대는 교육부 의대증원 수요조사에서 현 정원 40명의 3배에 달하는 110명 정원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환자 진료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응급실·중환자실 등 중증 입원 환자들의 진료를 보존하기 위해 순차적인 진료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국 의대 중 가장 먼저 비대위 체제를 갖추고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서울의대 교수들은 오는 11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서울의대 교수협은 당초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며 보건복지부와 대화에 나섰지만, 양측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자 정 교수가 자진 사퇴하며 1기 비대위 활동이 일단락됐다. 최근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2기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된 만큼, 교수들의 집단행동을 포함한 장기 대응기조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는 내년도 의대 의예과 입학 정원을 15명 늘리고, 의사 과학자를 배출하는 의과학과자를 신설하면서 총 65명 증원 신청을 했다. 서울대병원은 기존 정원보다 2~3배 증원 신청을 한 다른 대학 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의대 교수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교육부에 의대 증원을 신청했다"는 책임을 물어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지면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협은 84.6%가 전공의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응답했다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아직 빅5 병원을 포함한 주요 수련병원에서 교수들이 집단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약 8000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사전통지서가 통보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새롭게 임용되거나 계약기간을 연장할 예정이었던 전공의 상당수가 재계약을 포기했고, 의대 강의와 병원 진료를 겸하는 교수들마저 집단행동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일선 병원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가톨릭의대 학장단은 대학본부의 '의대 증원 신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전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원광의대와 영남의대, 충북의대, 성균관의대, 연세의대에 이어 아주의대 등 전국 곳곳에서 교수들을 주축으로 한 비대위 구성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은 비대위 차원에서 반대 성명을 내거나 겸직해제(진료거부), 사직, 법적 대응 등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미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에 증원 취소 소송과 집행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소송에는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 대표가 참여한다.
익명을 요구한 수련병원 교수는 "남은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 참여율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 하는 남은 인력들의 번아웃이 심한 데다 개인적으로 사직 후 개원 등을 고민하는 교수들이 많아 당분간은 진료 정상화를 기약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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