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개강 시즌인데도 술을 마시고 노는 모임이 줄어 음주와 관련한 사고가 거의 없어요. 대학생들도 술을 마시기보다는 도서관에 가는 것 같아요.”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 인근 파출소 A 팀장)
“1주일에 세 번 정도 가게를 찾던 단골손님도 요즘에는 한두 번 정도 방문해요. 물가가 많이 올라 손님들이 술에 쓸 돈을 아끼고 있는 것 같아요.” (서울 사가정역 먹자골목 식당 주인 최 모 씨)
음주 문화가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혼술’ ‘집술’ 문화가 확산되고 직장 회식마저 사라졌다. 여기에 거센 인플레이션 때문에 주류와 음식 값마저 크게 올라 술집에서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줄면서 ‘음주 소란’ 등 경범죄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8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음주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음주 소란’ 범칙 행위가 통고처분 건수와 비율이 모두 크게 줄었다. 지난해 전국 기준으로 음주 소란은 2023년 6160건으로 전체 경범죄 통고처분 대비 16.5%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7642건(19.8%), 6251건(17.7%)으로 집계된 데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음주 소란 범칙 행위 건수로만 보더라도 2년 새 20%나 감소한 셈이다.
음주 소란이 줄어든 원인으로는 팬데믹을 거치며 회식이 줄어들고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혼술 문화가 퍼진 것이 꼽힌다. 더구나 최근 가파른 인플레이션에 따른 주류 및 음식 값 상승으로 예전처럼 2차, 3차에 걸쳐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줄어든 것도 한 이유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해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가 감소했다’는 응답률이 64.4%에 달했다.
경범죄를 단속하는 일선 경찰도 음주 문화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동대문구 파출소 팀장 A 씨는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밖에서 단체로 술을 먹기보다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종로구 파출소 팀장 B 씨는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음주 절제를 많이 하는 것 같다”며 “야간에 순찰을 해봐도 예전처럼 밤 늦게까지 마시는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문화가 바뀐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교 개강 시기인 3월은 신입생 환영회, 오리엔테이션(OT) 행사 등으로 주취자 수가 늘어나는 시기다. 다만 현장은 올해 이 시기 대학생들이 과거와 달리 음주를 절제하는 모습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 의정부에 거주하는 대학생 이유민(26) 씨는 “과음하면 건강에도 좋지 않고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는 게 싫다. 술 마실 시간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불경기 속 주류 가격 상승도 달라진 음주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주 소비자물가지수는 2015년 83에서 2017년 93, 2021년 100에 이어 올해 1월에는 109까지 상승했다. 반면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15세 이상 1인당 알코올 소비량(국내 기준)은 2015년 8.409ℓ에서 2017년 7.872ℓ, 2020년 7.117ℓ, 2021년 6.803ℓ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영등포구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원래 경제가 어려우면 주취자 신고가 줄어든다. 요즘은 경범죄 신고가 전체적으로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팬데믹을 거치며 외식산업이 축소됐고 회식 문화도 예전 같지 않다. 과거에 비해 술을 많이 먹을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며 “건강을 중시하는 젊은층의 달라진 소비 패턴과 주류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 지출 부담도 음주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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