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과 중도 우파 민주동맹(AD)이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대신 극우 정당 ‘셰가(Chega)’의 제3당으로서의 존재감이 급부상하면서 유럽의 극우 물결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0일(현지 시간) 실시된 포르투갈 총선 결과 셰가는 18.1%를 득표해 전체 230석 가운데 48석을 확보했다. 창당 첫해인 2019년 총선에서 1석, 2022년 총선에서 12석을 얻은 데 이어 세 번째 선거에서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여준 셈이다. 민주동맹은 79석을 얻어 집권 사회당(77석)을 제치고 원내 1당으로 올랐지만 단독 과반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극우 정당 셰가의 부상이다. 셰가는 법률가이자 전직 축구해설가로 사회민주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던 앙드레 벤투라가 탈당해 2019년 4월 창당한 정당이다. 포르투갈어로 ‘이제 그만해(enough)’라는 뜻을 가진 셰가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을 파고들면서 지지세를 넓혀왔다.
앞서 수십 년간 번갈아 정권을 잡은 사회당과 사회민주당에서 잇따라 권력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민심 이반이 심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사회당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가 측근의 부패 스캔들로 사임하면서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셰가는 ‘부패 청산’을 화두로 내세워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전문가들은 셰가가 과반 없는 의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담당하며 제3당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원내 1당으로 올라선 민주동맹은 셰가와의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정부 출범을 위해 협력을 압박하는 내부 요구가 커질 수 있다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한편 셰가의 급부상은 유럽 내 극우 확산 추세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앞서 2022년 이탈리아에서 100년 만에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탄생했고 그해 프랑스에서도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총선에서 하원 577석 가운데 89석을 차지해 원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4월 핀란드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국민연합당은 극우 핀란드인당을 포함한 3개 정당과 함께 새로운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그리스 총선에서도 극우 성향의 소수정당 3곳이 의회에 입성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도 극우 자유당이 1위를 차지했다.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에 당원 가입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유럽 내 난민 유입이 급증하며 반(反)난민 정서가 확산하고 있는 데다 물가·금리 상승 등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서 민족주의·포퓰리즘 열풍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2년간 이탈리아·그리스·스웨덴·핀란드 등에서 그러했듯 유럽연합(EU) 내에서 나타나는 극우 흐름의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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