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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지우고…인생의 실타래를 찾다

◆신민주 개인전 '아리아드네의 실'

붓질하고 밀어내는 '스퀴지' 반복

로마신화 읽고 회화의 본질 탐구

서울 PKM갤러리서 내달 13일까지


그리기와 지우기라는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캔버스에 의미가 채워진다.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붓으로 캔버스에 획을 긋고, 이를 다시 스퀴지로 밀어내면 물감에 가려져 있던 색이 프로타주처럼 드러난다. 결과물은 스퀴지로 밀어낼 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신진 찾아 세상에 알려 온 PKM갤러리가 올해 대중에게 알릴 작가로 신민주를 선택하고 4월 13일까지 작가의 개인전 ‘아리아드네의 실’을 개최한다. 신민주는 굵은 붓질을 한 후 이를 지우고, 또 다시 새로운 붓질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다.

신민주의 ‘프로메테우스의 불’. 사진 제공=PKM갤러리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캔버스와 물감과 붓이라는 한정된 재료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가능성을 꿈꾸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성실하게 해 나가고 있다”며 ‘수행으로서의 붓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는 일상 속 자신이 마주치는 수많은 감각과 이미지를 붓질로 그려낸 후 스퀴지로 밀어내는 행위를 반복하며 작품을 제작한다.

작가는 “스퀴지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내 실패를 갈아엎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도구”라며 “용맹하게 스퀴지를 다룰 때 내 밑그림이 돌에 새겨진 자국처럼 드러난다”고 말했다. 작가는 각각의 작품이 모두 운명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한 사람이 했는데도 결과물이 매번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작가 역시 더 살릴 부분이 있으면 작업을 계속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안되겠다 싶으면 손을 뗀다. 그것이 작품의 운명이라는 것.



이 같은 작가의 고유한 철학은 이번 전시의 제목 ‘아리아드네의 실’과도 연결된다. ‘아리아드네의 실’은 그리스·로마신화의 한 에피소드 제목이다. 크레타 왕국이 바친 인간 제물을 잡아 먹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미궁으로 향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에게 크레타 왕국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타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가 쓴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고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그는 “인생도 실타래 같은 도구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했고, 나에게는 나를 변질시키지 않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며 제목에 대해 설명했다. 작가는 실제로 이번 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선정할 때도 ‘아리아드네의 실’을 연상시킬 수 있는 작품만 추렸다. 그는 “추상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매우 불친절한 결과물"이라며 “이번 작업도 여전히 즉흥성을 발휘했지만 그리스·로마신화와 접합점을 찾게 되면서 그 내용을 연상하는 제목과 이야기를 작품에 투영했다”고 말했다. 제목에서 힌트를 받아 상상력을 동원하면 막막하다고 여긴 추상화를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민주의 ‘그날 새벽 트로이’. 사진 제공=PKM갤러리


신민주의 작품은 오는 4월 3~7일 열릴 ‘2024 화랑미술제’ PKM갤러리 부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갤러리는 작가의 작품으로 솔로 부스를 꾸미고 이번 전시와 연계해 작품을 감상하도록 할 예정이다. 전시는 4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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