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조선·해운 분야로 전선을 넓혀가는 양상이다. 전미철강노조(USW) 등 미국 내 5개 노조가 ‘무역법 301조’를 앞세워 중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를 조사해달라고 조 바이든 정부에 청원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업은 중국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미 행정부가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미중 갈등의 새로운 전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계 1위인 중국의 조선 산업이 미국의 규제를 받을 경우 세계 2위인 한국 조선 산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은 12일(현지 시간) USW가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해양·물류·조선 분야에서 중국의 ‘불합리하고 차별적 관행’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노조 측은 청원서에서 “중국 정부가 조선업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을 뿐 아니라 자국 철강 업체에는 조선사에 원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매콜 USW 위원장은 “중국이 조선업에 막대하게 투자하고 약탈적 무역 관행에 가담하는 등 세계무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조선업에서 중국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모든 적절하고 실행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USTR에 미국 항구에 정박하는 중국산 선박에 요금을 부과하고 국내 조선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며 미국산 상선에 대한 수요를 창출할 방안 등을 촉구했다. USTR은 청원 내용을 검토해 45일 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청원서는 무역법 301조에 따라 제출된 것이며 중국 정부가 조선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다양한 정황을 첨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글로벌 조선업 점유율 1위일 뿐 아니라 글로벌 해운업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양 컨설팅사 클락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톤수 기준으로 전 세계 상업용 선박의 50% 이상을 생산했다. 또한 중국 해운 업체들은 전 세계 96개 항만에서 적어도 한 개 이상의 터미널을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다. 항만에 쓰이는 화물 크레인의 경우에도 중국 국영기업 ZPMC가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조선업은 0.13%(2022년 기준)로 미미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가 노조 측 요청을 거절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핵심 지지층인 노조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조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FT는 “조사가 시행되면 미중 관계에 더 많은 긴장을 불러올 것”이라며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USW는 청원서에서 중국의 상업 물류 플랫폼 ‘로그인K’에 대해서도 국가 안보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로그인K가 전 세계 배송 및 화물 이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 관리 및 기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데 대해 “주요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국가 안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