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의 소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남학생과 또래 친구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소녀는 소녀를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끝없이 먹어 자신의 몸을 부풀렸다. 소녀는 “위로받고 싶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위로해달라고 해야 하는지 모를 때 음식은 내 손에 닿는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회고했다.
신간 ‘헝거’는 저자의 자기혐오에 관한 솔직한 기록이자, 자기혐오를 자기 존중으로 바꿔나가는 처절한 과정을 그린 회고록이다. 저자 록산 게이는 자신의 수치심과 고독이 담긴 삶을 꺼내놓으며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정을 담담히 적어 나간다.
저자는 “나는 하나의 신체, 수선이 필요한 신체였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누군가의 욕망의 눈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먹고 또 먹었다. 20대의 저자는 키 190cm에 몸무게 260kg에 달하는 거구가 됐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삶은 더욱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졌다. “20대 내내 나의 사생활은 끝없는 진창 속이었다. 나를 배려하거나 존중하며 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자기혐오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이 절대 아니었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스스로 내 몸을 망가뜨려버려서 대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존기는 처절하기 그지없다. “비난할 무언가가, 누군가가 필요했기에 나 자신을 비난했고 무참히 무너진 내 몸을 비난했다”는 그녀는 자신이 만든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버렸다.
저자에 따르면 자신의 몸에 억압되어 있는 여성들은 그녀 말고도 너무나 많다. 저자는 그런 여성들이 용기를 얻고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악랄한 문화를 바꾸는 것이 저자의 목표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몸에 대한 비난과 편견, 차별을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당신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지 상관없이 오직 당신의 몸만이 공공 담론의 대상이 된다”며 “당신은 곧 당신의 몸이고, 당신의 몸은 말할 것도 없이 더 작아져야 한다”고 꼬집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한 자기 긍정의 메시지를 설파하는 것은 아니다. “괜찮다”고만 말하는 것은 자기 존중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 자신의 몸에 대해 자유로워질 때 진정한 자기 존중이 가능해진다. “내 행복의 기준은 내 몸에 더 편안해하는 감정”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다른 사람의 몸을 독단적으로 규정하려는 문화적 악습에 일침을 가한다. ‘자신에게 맞는 자존감’을 만들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갖추는 것이 자기 존중의 출발점이다.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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