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와 벨라루스산 수입 곡물에 관세 부과를 준비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EU가 러시아산 식료품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T는 이번 조치가 유럽 농민들과 일부 회원국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앞으로 수일 내에 러시아와 벨라루스산 곡물에 1톤당 95유로(약 14만원)의 관세를 부과할 전망이다. 가격이 최소 50% 오르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이며 러시아 곡물에 대한 수요를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러시아산 오일시드(기름을 짤 수 있는 식물 종자)와 파생 제품에도 50%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FT는 관세의 경우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없어 해당 조치가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조치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효과는 물론 일부 EU 회원국을 달래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게 FT의 분석이다. 앞서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산 수입품을 제한하자고 압박했지만 EU는 이 같은 조치가 세계 식품 시장에 문제를 초래하고 개발도상국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자국산 곡물 수요를 위축시키는 저가 우크라이나산 곡물과 늘어나고 있는 러시아산 곡물 수입에 대해 농민들의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중이다. 이에 라트비아는 지난달 단독으로 러시아와 벨라루스산 다수 식품 수입을 금지했고 리투아니아는 엄격한 화물 검사를 발표했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역시 이달초 러시아산 식품 수입을 앞서 금지한 라트비아의 조치를 뒤따를 수 있다고 EU에 경고했다. 그는 다만 농산물 제재에 관해 “우리는 전체 EU의 결정을 따르는 것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EU는 이번 제재에 영향을 받는 러시아산 곡물과 오일시드 등을 지난해 400만톤 수입했다. EU 전체 소비량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앞서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농업담당 EU 집행위원은 폴란드로 수출되는 러시아산 곡물이 무시해도 될만큼 적은 양이라고 언급했으나 최근에는 폴란드를 방문해 “러시아가 식품을 무기로 사용하면 우리도 대응해야 한다”며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역시 지난 15일 투스크 총리에게 “러시아산 농산물 수입 제한 도입 가능성을 평가 중”이라고 말했다.
EU는 연간 3억t 이상의 곡물과 오일시드를 생산하는 순수출국으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수입품이 사실상 필요 없다. EU의 조치에 러시아가 보복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는 이미 대부분의 EU 식품 수입을 금지했고 해당 부문의 유럽 업체 다수도 지난 몇 년간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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