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5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고문이 한국에서 사상 최초로 열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개막전에 시구자로 나서기 위해 30년 전 데뷔전에서 쓴 글러브를 꺼냈다.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개막전 기자회견에 낡은 글러브 하나를 들고 들어온 박찬호는 “30년 전 내가 MLB 개막전에 쓴 글러브다. 의미 있는 시구에 함께하고자 뜻깊은 물건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구종을 노출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글러브 제조사에서 오른손 검지를 가리기 위한 보호대를 새로 만들어줬다”면서 “보기에는 흉해도 30년이 지난 오늘 이걸 다시 쓰게 될지 상상도 못 했다”고 글러브에 대해 소개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 시대의 개척자로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그해 4월 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 9회 등판했다. 팀이 0대4로 끌려가던 상황이었고 직구와 슬라이더밖에 던지지 못하는 ‘풋내기 강속구 투수’였던 그는 1이닝 1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을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박찬호는 당시 경기를 떠올리며 “처음 메이저리그 경기에 등판한 날 2점을 내줘서 개인적으로는 부끄러웠다. 그런데 토미 라소다 감독님이 더그아웃 앞에서 안아주면서 공을 하나 주시더라”며 “‘이걸 왜 주셨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나중에 라소다 감독님이 ‘한국 선수가 처음 MLB에서 잡은 삼진 공’이라고 해주셨다. 그 이후부터 모든 물건을 소장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MLB에서 챙긴 124승의 모든 승리 기념구를 보관하고 있는 박찬호는 공주 박찬호기념관에 이를 전시 중이다. 이날을 위해 챙겨온 글러브 역시 박찬호기념관 소장품을 특별히 가져온 것이다.
박찬호는 “아침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구 하나 던지는데, 마치 한 경기 다 던지는 걸 앞둔 것처럼 긴장됐다”면서 “제가 성장해서 한국야구 발전과 (MLB 개막전을 서울에서 하는)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다저스(1994~2001년)와 파드리스(2005~2006년)에서 모두 뛰었던 인연이 있다. 현재는 파드리스 특별 고문인 그는 “오늘 경기는 누가 이기는지는 의미가 없다. 한국에서 역사적인 경기가 펼쳐지는 것이고, 한국인에게 최고의 명승부가 열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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