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정규직 보호가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을 심화시킨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55∼64세 임금 근로자 중 임시 고용 비중은 34.4%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6%)의 네 배에 이르고 36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근로자의 근속 연수도 48세에 정점을 찍은 뒤 60대에 1~2년으로 급감했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의 경우 50~60대로 갈수록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연공서열제와 정규직 과보호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성과 대비 임금이 높은 중장년층을 해고하거나 새로 뽑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KDI의 설명이다. 강한 노동 규제가 외려 중장년층을 고용 시장에서 퇴출시켜 노후 불안과 연금 고갈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낮은 노동생산성은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등의 조사에서 한국의 노동시장 경쟁력은 바닥권 수준으로 평가받으면서 전체 국가 경쟁력 순위를 떨어뜨렸다. 최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800여 개 회원사들은 한국에 아시아 비즈니스 허브를 두고 싶지만 과도한 노동 규제가 걸림돌이라고 지목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이 한국에 대해 고용 형태, 근로시간, 임금구조와 관련된 노동 개혁을 주문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4차 산업혁명 등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노동시장 유연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많은 여성들이 경력 단절과 재취업을 우려해 아예 출산·육아를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로자들이 더 오래, 장소·시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려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노동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주52시간제 개편 등 근로시간 유연화가 급선무다.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상승 제한, 비정규직 안전망 강화 등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에도 나서야 한다.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꿔 생산성만큼 대우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기업의 혁신과 활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 노동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저성장 고착화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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