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발전했고, 복지 제도의 사각은 줄고 있으며, 생활과 위생 수준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현대인의 숫자는 그 어느 때보다 많다.
신간 ‘정상이라는 환상’은 “건강에 가장 신경을 쓰는 시대지만 우리는 건강하지 않다”며 “만성적 신체 질환과 정신 질환은 증가하고 있다”고 역설적인 상황을 지적한다. 스트레스, 트라우마, 중독 등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인 저자는 “정상성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독성 문화’가 신체적·정신적 해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일갈한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정상 개념은 교활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런 노력을 방해한다”고 고발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비정상의 요소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주입시킨다.
책에 따르면 우리 건강 문제의 대부분은 신체와 정신의 복합적 문제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건강 문제를 신체의 문제와 정신의 문제로 이원화한다. 대부분의 질병은 우리가 겪어 온 삶과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정신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우리 모두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우울함은 다양한 병으로 이어진다. 정신 문제는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키고, 면역 체계 등에도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신적 문제는 신체적 문제의 치료도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은 이를 간과한다. 외과·내과 등과 정신건강의학과의 협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신의학 전문가인 저자는 트라우마 등 오래된 정신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질병들을 뿌리뽑기 힘들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와 분석, 연구 인용을 통해 본인의 주장을 논증한다. 이에 따르면 수많은 면역 관련 질환과, 심지어는 관절염조차 스트레스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이루고 있는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그 관계성과 사회성에 ‘정상’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와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일 수 있는 사회가 ‘진짜 정상’인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슬픔을 직시하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온전함을 위해 나아가는 첫걸음은 우리 자신의 고통과 세상의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진정한 치유란 과거와 현재의 우리 삶에 대한 진실에 가장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우리 자신을 여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과거를 ‘비정상’으로 폄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신의 경험을 비정상으로 돌리며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의 원제는 ‘정상이라는 환상’을 넘어선 의미인 ‘정상이라는 신화’다. 과학과 기술, 사회 발전의 근간인 표준화와 수치화, 비교방법론은 우리를 물질적으로 평화롭게 바꿔 놓았으나 수많은 자연스러운 요소들을 비정상으로 뒤바꿔 놓았다. 자기 자신과 누군가를 평가하는 틀의 범위를 넓히고, 이해와 인식의 관점을 새롭게 해야 할 때다. 3만 7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