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화 손짓에도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잇따라 제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25일 고려대·울산대 등 전국 40개 의대 대부분에서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거나 사직을 결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및 배정을 먼저 철회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백지화가 0명이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으나 정원 2000명 확대 반대에 무게를 실었다. 전날 전의교협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간담회 이후 한 위원장의 중재로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하고 의료인과 건설적인 협의체 구성을 지시했는데도 외려 실력 행사를 강행한 것이다.
의료계가 ‘의사를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비뚤어진 사고에 갇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오만한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선진국들은 고령화를 감안해 의대 정원을 꾸준히 늘려왔지만 우리나라는 의사들의 반발로 27년간 증원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2000년 의약분업 실시를 계기로 정원을 351명 줄여 필수·지역 의료 붕괴 위기를 초래했다. 의대 정원은 헌법상 국민 건강권 보호 의무를 부여받은 정부가 각계의 의견을 듣고 면밀히 검토해 결정한 뒤 책임질 사안이지 결코 의사의 허락을 받을 사안이 아니다.
정부가 대화 방침을 밝히고 면허 처분을 잠정 보류한 만큼 의대 교수들과 전공의들은 사직서 제출을 철회하고 환자 곁으로 속히 돌아와 정부와의 대화에 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의사 수가 해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응급실 뺑뺑이’를 통해 확인됐듯이 필수·지역 의료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의대 정원 대폭 확대는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사안이지만 정부가 의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다소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는 있다. 지금은 정부와 의사들이 조건 없이 만나 의대 증원 규모와 방식뿐 아니라 의료 인력 확충, 지역 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 공정한 보상 체계 등 4대 의료 개혁 방안 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 접점을 찾아야 할 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우리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돼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환자와 국민들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의사들은 건설적인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