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정신의학자 가보 마테의 저서 ‘정상이라는 환상’은 최근 출간 전에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북펀드를 통해 목표 금액의 219%를 달성했다. 3만7000원으로 비교적 고가인데다 인문 서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리 원서로 책을 접한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돌면서 100명 가량이 펀딩에 참여해 출판계에 화제가 됐다.
북펀드(북펀딩)는 책이 출간 되기 전에 독자들이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책 출간에 참여한 뒤 출간 이후에 책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정상이라는 환상’ 북펀드에 참여한 한 30대 독자는 “가보 마테를 좋아해 아마존 킨들을 통해 원서로 접했는데 주변 지인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어 한국어 출간본 펀딩에 참여했다”며 “북펀드를 통해 국내에 더욱 다양한 책들이 들어오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27일 출판 업계에 따르면 문학 분야에서 한정판 전집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북펀드가 인문·사회·예술 서적은 물론 최근에는 아동·취미·에세이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기존에는 주로 ‘소장 가치’를 고려해 독자들이 북펀드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원하는 책을 출간해달라는 적극적인 독자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독자들은 그 동안은 유명 전집을 소장 가치가 높은 양장본으로 출시하는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알라딘 북펀드 역대 1위로 꼽히는 유우지 작가의 패션 완전판의 경우 2022년 성경책 형태의 양장본으로 재출간되면서 9186명이 참여해 펀딩 금액이 8억6000만원이 모였다. 북펀드 금액이 1억원이 넘으면 흥행으로 간주되는데 반지의 제왕 일러스트 에디션, 러시아 문학 거장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도스토옙스키 전집, 빨간머리 앤 전집 등이 1억원을 넘겼다.
도스토옙스키 전집의 경우 출판사 열린책들이 11권 전집을 대상으로 북펀드를 진행했는데 300만원의 목표 금액으로 시작된 북펀드는 1억4885만원의 금액을 모았다. 목표 금액의 500배 가까이를 달성한 것이다. 새로운 장정본과 굿즈 외에도 번역에 변화한 성평등 감수성 반영했다는 부분 등이 독자들에게 어필했다는 평가다.
올 초 예스24에서 진행한 박시백의 고려사 스페셜 전집의 경우 목표치의 39배를 달성했다. 알라딘 관계자는 “작가나 도서에 대한 팬덤이 명확하거나 고급스러운 장정과 한정판 굿즈로 소장 가치를 높인 도서들의 경우 열광적인 반응이 나온다”고 전했다.
출판업계에서는 텀블벅, 와디즈 등 크라우드 펀딩 문화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다 보니 독자들이 책에 대해서도 사전에 펀딩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펀딩 건수로도 변화가 감지된다. 알라딘에서는 지난해 총 218건의 북펀드가 진행됐다. 올해는 현재까지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 북펀드가 68건에 달한다. 예스24의 경우 지난해 북펀드 전체 건수는 70건이었는데 올해 현재까지 39건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됐다.
서점 주도로 시작했던 북펀드 역시 역으로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알라딘의 경우 북펀드 페이지를 별도로 신설하고 검색창에도 북펀드 마케팅을 폭넓게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마케팅 채널이 부족한 중소형 출판사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빛 비즈 관계자는 “북펀드에 참여하는 독자들은 가격에 대한 민감성이 낮고, 책의 의미나 소장할 수 있는 한정판 굿즈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