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 방산업체가 호황을 맞았다는 기대감과 달리 2년이 넘어가는 전쟁 기간에 전 방산업체의 성장세는 오히려 꺾인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각종 무기와 군사장비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었다. 하지만 세계 100대 방산기업의 매출은 전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세계 100대 기업의 무기·군사 서비스 매출은 5970억 달러(약 779조 원)로, 전년보다 3.5% 줄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세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무기 수요는 늘었지만 생산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규 주문에도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이 생산 능력을 크게 늘리지는 못한 탓이다. 노동력 부족, 원가 상승,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가속화한 공급망 붕괴 등이 원인이다.
또 일부 국가에선 새로운 주문이 이뤄졌지만 이는 주문과 생산 간 시차로 인해 2022년 매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SIPRI는 설명했다.
SIPRI의 군비·무기 생산 프로그램 책임자인 루시 베로-수드로 박사는 “많은 무기 회사가 고강도 전쟁을 위한 생산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다만 탄약을 비롯해 새로운 계약이 체결됐지만 이는 2023년 이후 더 높은 매출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공급망 문제·코로나19로 노동력 부족 탓”
세계 100대 방산 기업을 지역별로 보면 미국에선 매출이 줄었다. 반면 아시아·오세아니아, 중동 지역 기업은 늘었다. 세계 100대 방산 기업 중 42곳이 이름을 올린 미국의 2022년 총매출은 320억 달러(약 395조 원)로 전년보다 7.9% 급감했다.
세계 100위권 총매출의 절반이 넘는(51%) 수준이지만, 42곳 중 32곳의 매출이 줄었다. 공급망 문제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난 티안 수SIPRI 석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신규 주문이 밀려드는 것을 보기 시작했지만, 이들 회사의 수주 잔고와 생산 능력 확대의 어려움으로 이들 주문으로 인한 매출은 아마도 2∼3년 후에야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SIPRI는 그러면서 한국과 이스라엘처럼 언제든 주문에 맞춰 제조 가능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있고, 짧은 공급망에 의존하는 국가들에서 매출 증가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시아·오세아니아 22개 기업의 무기 매출은 전년보다 3.1% 증가한 1340억 달러(약 175조 원)를 기록했다. 전년에 이어 2년 연속 유럽보다 많았다.
이런 틈새를 파고든 건 중국이었다. 중국은 세계 100대 방산기업 중 8개 기업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들의 총매출은 전년보다 2.7% 증가한 1080억 달러(약 141조 원)를 기록했다. 세계 100위권 총매출의 18%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규모다. 증가세로는 2.7% 늘었다.
유럽 방산기업도 증가세를 보였다. 100대 방산기업 중 26곳으로, 총매출은 전년보다 0.9% 증가한 1210억 달러(약 158조 원)로 집계됐다. 중동 방산기업의 매출은 총 179억 달러(약 23조 원)로 전년보다 11% 증가해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 지속되고 있는 국가 간 또는 종교적 분쟁으로 비정규적이 지속되면 무기 소유가 꾸준히 늘기 때문이다. 당장 튀르키예는 100대 방사기업 중에 4개 뿐이지만 전년보다 22%나 급증했다. 이스라엘 방산기업 3곳도 6.5% 증가했다.
中 세계 100위권 매출 18%차지 증가세
SIPRI 디에고 로페스 다 실바 선임연구원은 중동 방산기업들의 매출 증가 배경에 대해 “중동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덜 정교한 제품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급증하는 탄약 수요 등의 무기에 발빠르게 생산을 늘릴 수 있었서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상위 100위 안에 든 한국 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 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로템 등 4곳이다. 이들의 2022년 총매출은 0.9% 감소했다. 한국 최대 방산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매출이 8.5%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고 SIPRI는 분석했다.
SIPRI는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 아랍에미리트(UAE)와 대규모 무기 거래 계약을 체결한 후 주문이 급증해 향후 몇 년간 매출이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미국 방산기업의 주가는 급등하고 모습이다.
지난주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 독일 최대 방산업체인 라인메탈과 헨솔트 주가는 올 들어 최근까지 각각 50%, 34% 이상 올랐다. 시가총액도 각각 200억5700만 유로(약 29조900억 원), 38억9500만 유로(약 5조6500억 원)까지 불어났다.
같은 기간 영국 BAE시스템스가 16.04%, 프랑스 탈레스그룹이 9.89% 오르는 등 각국을 대표하는 방산업체 또한 상승세를 보였다. 2022년 전쟁 발발 직후 주가가 우상향 곡선을 그렸고 상장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주가가 가장 크게 오른 라인메탈은 전차포 개발의 강자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국영기업 우크로보론프롬과 전차 생산 등을 위한 합동벤처를 설립했고 지난달엔 우크라이나 방산업체와 현지 탄약공장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우크라戰 장기화에 美·EU 방산주 우상향
헨솔트는 방공 시스템에 들어가는 ‘TRML-4D’ 대공 감시 레이더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며 전쟁 관련주로 떠올랐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18억4700만 유로(약 2조6700억 원)로 전년 대비 8.2% 늘었다. 수주 실적도 20억8700만 유로(약 3조 원)로 전년 대비 4.7% 뛰었다. 헨솔트 측은 “TRML-4D 레이더의 납품이 센서 부문 실적을 키운 결과”라고 밝혔다.
BAE시스템스는 우크라이나 포병 장비 복구와 무기 제조를 지원하는 기업이다. 탈레스그룹은 방공 레이더와 요격 미사일 등을 공급하며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다.
몸집이 무거운 미국 방산 ‘대장주’도 우상향 추세를 나타냈다. 세계 최대 항공방산업체로 꼽히는 RTX는 올 들어 주가가 9% 가량 올랐다. 장갑차와 잠수함을 만드는 제너럴다이내믹스도 같은 기간 주가가 6% 이상 상승해 연중 최고가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군사 장비 수출은 전년 대비 16% 증가한 2380억 달러(약 317조 원)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권 무기 수입이 증가한 덕분이다.
미 헤지펀드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체코 등 러시아 접경 국가가 안보 불안으로 무기 수입을 늘리고 있어 올해도 주요 방산업체의 추가적인 주가 상승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