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최근 수년 사이 부쩍 눈에 띄는 단어가 ‘기후 정치’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성장률도 빈부 격차도 아닌 기후위기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정치의 중심에 기후 대응을 놓아야만 한다는 주장이 담긴 단어다. 자연히 ‘기후 유권자’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기후정치바람이 유권자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2.5%는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달라도 기후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 또는 정당에 투표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기후라는 키워드가 정치권을 흔들 조짐이 감지되는 이때 정혜림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 이동학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김혜미 녹색정의당 대변인(서울 마포갑 후보) 등 ‘젊치인(젊은 정치인)’ 3인을 만나 앞으로 어떻게 기후 정치를 확산시킬지 물었다.
“보수가 기후 대응도 해?” 정혜림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
민간기업에서 정치권으로 갓 옮긴 정 후보는 “탄소 중립은 보수당이 잘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기후 의제는 산업 의제이자 경제 의제라서다.
그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예시로 들며 “탈탄소라는 목표를 무탄소인 원자력 없이 재생에너지만으로 채울 수는 없고 무엇보다 태양광·풍력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산업 경쟁력을 갖췄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상반기 국내에 보급된 태양광의 60% 가까이가 중국산일 만큼 중국제에 쏠려 있는 산업인데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보급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탄소 중립 성과를 평가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정 후보는 “탄소 다배출 산업을 ‘나쁜 놈’으로 지목하고 때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우리가 우위를 점한 산업과 탄소 중립이 함께 갈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하는 게 정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도층이 듣기에 이념적인 기후 의제가 아닌 경제 산업적인 솔루션을 국민의힘이 뾰족하게 가져가면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에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게 정 후보의 주장이다. 정 후보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10배·100배 이상의 정부 지원금이 제공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비판만 받는다고 푸념하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대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글로벌 탄소 규제로 페널티를 받고 있는 국내 기업들을 더 때려서 무엇이 남겠느냐는 지적이다. 그는 “기술·산업 전문가들이 참여해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우위를 노리고 육성할지, 전 세계적으로 어떤 기술과 산업이 필요한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후보는 “이런 관점에서 기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답답해서 산업에서 정치로 옮겼다”며 웃었다.
기후 의제만큼은 미래 세대를 위해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우리가 장기적으로 지불할 비용, 산업 전환,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 등 당사자인 젊은이들의 기준에 맞는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기후 의제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젊치인이 너무나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부터 모범 보여야” 이동학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수온 3.4도의 인천 영종도 바다에 점점 잠긴다. “기후위협은 빙하를 빠른 속도로 녹이고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져 우리가 사는 도시를 파괴합니다. 인천의 해수면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기후위기를 잘 아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물에 잠기게 할 수는 없다”고 외칠 때쯤 그는 물속에 거의 잠긴 상태가 됐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 같은 홍보 영상으로 기후 정치인으로서의 개성을 드러냈다.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이 전 최고위원은 가장 관심을 갖는 기후 이슈로 ‘쓰레기’를 꼽았다. 그는 2017~2019년 저출생·고령화를 테마로 세계여행을 떠났지만 여행 도중 기후위기 대응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2020년부터 ‘쓰레기센터’를 설립해 대표를 맡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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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의식은 재생에너지·기후테크에 대한 정책적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붕 태양광, 담벼락 태양광처럼 시민의 행동반경을 제약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올해 경기도에서 모집한 에너지자립마을은 130개 마을이 신청할 정도로 전기료 절감 측면에서 시민들의 관심도 크다”고 말했다.
주민 참여를 더욱 이끌어내기 위해 이익공유제에 대한 정책도 고민 중이다. 이익공유제란 신재생에너지발전의 이익을 발전사업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과 공유하는 제도다. 이 전 최고위원은 마을 단위로 에너지 생산·공급·이용·판매 등을 결정하는 독일의 공동체 모델을 언급하며 “우리나라는 제도 미비로 사례가 적지만 정부가 마중물 역할만 해주면 마을 수익과 녹색산업 및 일자리까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정치권의 기후위기 대응이 안이하다는 비판도 했다. 기후위기대응기금을 현재 2조 4000억 원에서 2027년까지 5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국민의힘의 기후 공약을 겨냥해 “전체 정부 예산 650조 원 대비 턱없고 안일하다”며 “특히 기업 생존의 문제도 달려 있는 만큼 다음 먹거리 산업인 기후테크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정치권이 환경 이슈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선거공보물도 재생 용지로 만드는 식으로 정치권이 솔선수범해야 시장이 생기고 기업이 참여한다”며 동료 정치인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공공성 담보하는 에너지 전환을” 김혜미 녹색정의당 대변인·서울 마포갑 후보
김 후보는 사회복지사 시절 주거 빈곤이 최대 화두였다. 그러나 아무리 쪽방촌 개선 사업을 해도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을 빈곤 어르신들이 혼자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을 목격하며 주거와 기후의 접점을 고민하게 됐다. 서울 관악구의 반지하 주택에서 침수로 사망한 일가족의 사례처럼 기후위기는 주거 취약 계층을 집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 정책이 기후와 만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후 의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 출신으로서 기후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배경이다.
탄소 감축,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어떻게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할 것인지, 이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어떻게 완화할지 등을 녹색정의당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철학을 이름에 명시한 독일의 ‘기후보호법’이 그에게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에너지 분야와 관련해서는 지나친 정쟁화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연적인데 ‘원전 대 재생에너지’의 대립 구도 때문에 아무런 전진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배터리·재생에너지 산업이 이미 있고 앞으로 더욱 필요한데 현 정부는 정쟁화만 할 뿐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며 “거대 양당 모두 잘못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초당적 기후 정치의 가능성을 본다. 김 후보를 비롯한 세 명의 젊치인은 기후가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설정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리고 유권자들이 기후 대응의 책임을 정치권에 물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호소했다. 김 후보는 “그동안 기후 의제와 관련해 정치인들이 운만 떼고 성과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기후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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